정동영 민주당 내란특위 외환유치죄 진상조사단장이 12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번 12·3 쿠데타는 내란과 외환유치죄 양방향”이라며 “내란죄도 엄중하지만, 외환죄는 천인공노할 범죄다. 실행됐으면 나라가 절단났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외환을 유치해 그것을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 영구집권을 시도한 것”이라는 게 이날 조사단의 주장이었다. 진상조사단 소속 박선원 의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11월에 발생한 ‘오물 풍선 원점 타격’과 ‘평양 무인기 침투’ 의혹을 지목했다. “북서풍이 부는 11월에도 북한은 단 2차례밖에 오물 풍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부 군에서 ‘오물 풍선에 원점 타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주장이다. 박 의원은 “오물 풍선을 빌미로 비상계엄을 시도한 건 존재하지도 않는 위협을 명분으로 전운을 유발하는 외환유치 행위”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북한이 ‘평양 상공에 무인기가 출몰했다’고 밝힌 시점(10월 3·9·10일) 역시 윤 대통령의 계엄 준비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채현일 의원이 이날 간담회에서 “북서풍이 불면서 대북전단 살포가 어려워지자 무인기를 투입해 도발을 유도하고 계엄 명분을 만들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민주당 지도부 인사의 말을 종합하면, 민주당은 “윤 대통령 체포가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우려에 윤 대통령의 외환 유치 혐의를 부각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12·3 계엄 이후 줄곧 내란 혐의에 집중해왔지만, 탄핵안 통과 한 달이 지나도록 헌재 구성은 물론 특검, 국정조사 추진까지 속도감 있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지도부 중진)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와 관련 지난 8일 오전 비공개 최고위에서 “2차 특검법에는 외환 혐의가 중점적으로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당 핵심 관계자가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초 특검법 수사 대상을 내란 혐의 중심으로만 살폈지만, 전쟁을 유발하려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외환 혐의가 한층 더 심각하다는 게 지도부의 공통된 판단이고, 이 대표 지시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8일은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한 첫 내란 특검법이 국회 본외희에서 최종 부결된 날이다. 다음날 민주당은 특검 추천방식을 제3자 추천으로 바꾸는 대신, 외환유치 혐의를 추가한 내란 특검법을 재발의했다. 지난달 27일 출범한 외환유치죄 진상조사단이 출범 14일만인 1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한 것 역시 당 지도부 차원의 판단이 작용했다.
민주당이 새롭게 꺼내 든 ‘외환 혐의’에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외환죄 부분은 반드시 빠져야 한다”고 했다. 신동욱 대변인도 “위헌적, 반국익적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논평했다. 외환유치(형법 92조) 혐의는 외국과 물밑 소통을 해 국가에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를 처벌한다. 혐의가 인정되면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미수범 역시 처벌하는 중죄다.
대북 확성기 가동 및 전단 살포 행위 등을 외환 유치 혐의로 인정하려면 북한을 ‘외국’이라 봐야 하다는 점도 모순이라고 여당은 지적한다. “헌법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윤 대통령에게 외환죄를 적용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논리다. 헌법 4조는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한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현재까지 외환죄로 처벌한 사례는 전무하다”며 “형법 제92조(외환유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외국과 통모’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일단 북한을 ‘외국’으로 볼 수 있는가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야권 일각의 ‘2 국가론’(한민족 두 국가)에 착안한 발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9월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주장한 일이 대표적이다. 여권 관계자는 “벌써 북한을 외국으로 상정해 외환 혐의를 주장하는 걸 보면, 이재명 대표가 집권할 경우 대북 노선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꾀하겠다는 선전 포고 아니냐”고 말했다.
박형수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2차 특검법의 문제는 북한 군사 도발 억제를 위한 노력을 모두 외환죄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라며 “우리 군의 손발을 묶는 것이나 다름 없는데 김정은만 좋은 일 시키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여권 대선 주자들도 비판 목소리를 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종북 좌파들의 행태는 어느나라 사람인지 참 기이하다”고 지적했고,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외환죄 특검법 추진은 김정은의 하수인 노릇이자 이적행위”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민주당은 늦어도 오는 16일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특검법을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2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 안을 가져오면 국민의힘과 본회의 전까지 얼마든지 이야기하겠다”면서도 “여당과의 본회의 날짜 협의에 실패하면 국회의장과 조율해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특검법은 외환유치죄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므로 북한이 국가인지 여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국힘당 주장 자체가 거짓 선동”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