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핵보유국이라고? '아마추어 美국방장관'의 재앙적 발언 [현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한 피트 헤그세스(44)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호칭했다. 아시아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멤버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국방장관 지명자인 피트 헤제스가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를 떠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국방장관 지명자인 피트 헤제스가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를 떠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가 성폭행과 과도한 음주 의혹, 여성 차별 발언에도 불구하고 육군 소령 출신의 40대 '충성파' 방송 앵커에게 세계 최강의 미군을 통째로 맡기면서 불거졌던 ‘아마추어 국방장관’ 임명에 따른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헤그세스는 14일(현지시간)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북한의 핵보유국(nuclear power) 지위,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 사거리 증가에 대한 집중, 증가하는 사이버 역량은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 나아가 전 세계 안정에 위협을 가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군 특수작전부대를 시찰하고 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군 특수작전부대를 시찰하고 있다. 뉴스1

그가 사용한 표현은 핵무기 보유가 공인된 5개국(미·중·러·영·프)을 뜻하는 ‘핵무기 국가(nuclear weapon state)’와 달리,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 공인받진 못했지만 실질적으로 핵무기를 확보한 나라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만약 헤그세스가 이를 알고 사용했다면, 트럼프 2기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요구해왔던 ‘핵보유국 인정’을 수용할 수 있단 의미가 된다. 이를 전제로 북한과의 대화가 재개될 경우, 대화 목표는 비핵화에서 핵동결 또는 감축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헤그세스는 핵감축 회담의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그는 “트럼프보다 더 훌륭한 군의 총사령관은 없다”며 “나의 유일하고 특별한 관심사는 전쟁을 막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태평양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은 미국이 집중 배치된 “(미국령) 괌”이라고 답했다. 북한의 비핵화보다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의 돌발 발언이 나올 때마다 청문회장을 가득 채운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미국(USA)”을 연호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후보자가 14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후보자가 14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국 외교부는 당황한 기색이다. 청문회 직후 외교부는 “북한의 비핵화는 한·미와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견지해온 원칙으로, 북한은 절대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그러나 트럼프가 북한과 직거래를 할 경우 한국이 난처해질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이미 트럼프 집권에 대비해 남북 대화 단절을 선언했다. 트럼프와 직접 담판 짓겠다는 의도다.

엿새 뒤 물러날 조 바이든 정부의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비핵화에 대한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면서도 “(북·미 대화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달린 문제”라며 답답한 상황을 토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국방장관 지명자인 피트 헤그세스의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가 열린 14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한 시위대가 팻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국방장관 지명자인 피트 헤그세스의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가 열린 14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한 시위대가 팻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면 헤그세스는 한국에 대해선 군사·외교적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는 ‘아세안에서 중요한 나라 하나를 말해달라’는 질문에 “한국과 일본, 호주가 잠수함 관련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그가 언급한 3개국은 동남아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의 회원국이 아니다. 헤그세스는 이어 “동맹의 국방비 지출 증대와 부담 공유는 중요하고, (동맹)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며 “미국이 일방적(일방적 혜택 제공)일 수 없다는 점을 계속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피트 헤그세스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14일(현지시간) 미 상원에서 열렸다. 이날 헤그세스의 청문회장엔 많은 트럼프 지지자가 몰렸고, 청문회장 입구에는 헤그세스의 임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피트 헤그세스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14일(현지시간) 미 상원에서 열렸다. 이날 헤그세스의 청문회장엔 많은 트럼프 지지자가 몰렸고, 청문회장 입구에는 헤그세스의 임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헤그세스는 그러면서도 “인도·태평양에서 동맹국과 협력해 ‘공산 중국’을 억제하겠다”며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의 대중 견제 역할을 확대할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선박 건조가 절대적인 최고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고, 해외 기업들을 장려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트럼프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조선업 협력을 먼저 요청했다. 다만, 조선 협력이 주한미군 및 한국의 대중국 견제 역할을 확대할 목적으로 활용될 경우 지상군 위주인 주한미군의 규모 및 성격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피트 헤그세스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14일(현지시간) 미 상원에서 열렸다. 이날 헤그세스의 청문회장엔 많은 트럼프 지지자가 몰렸고, 청문회장 입구에는 헤그세스의 임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피트 헤그세스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14일(현지시간) 미 상원에서 열렸다. 이날 헤그세스의 청문회장엔 많은 트럼프 지지자가 몰렸고, 청문회장 입구에는 헤그세스의 임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헤그세스는 트럼프에 대해선 절대적 충성을 강조했다. 심지어 동맹인 덴마크령 그린란드나 캐나다에 대한 무력 투입 명령에 따를지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명령은 7700만표를 얻은 합법적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민주당은 헤그세스의 낙마를 시도해왔지만, 트럼프가 공화당 의원들을 압박해 낙마를 차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는 청문회를 앞두고 "공화당원들은 강인해지라"는 메시지를 냈고, 친트럼프 단체들은 반대 가능성이 있는 자당 의원들에게 3만 건이 넘는 전화·문자 ‘폭탄’을 보냈다. 결국 헤그세스를 비판해온 조니 언스트 의원은 청문회 직후 “찬성표를 던지겠다”며 굴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국방장관 지명자인 피트 헤제스가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를 떠나면서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국방장관 지명자인 피트 헤제스가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를 떠나면서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상원의원 100석 중 공화당은 53석을 확보하고 있다. 청문회를 마친 헤그세스는 밝게 웃으며 가족 및 지지자들과 포옹을 했다. 그런 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아무 말 없이 청문회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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