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 차례 출석 요구와 한 차례의 체포영장 집행을 완강히 거부했던 윤 대통령은, 대통령경호처가 공수처와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하며 한남동 관저의 문을 열어주고 나서야 수사에 응했다. 경호처 관계자는 “지휘부에선 새벽까지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요구했지만, 위법 우려로 지시를 따른 경호관은 없었다”고 했다.
윤, 페북에 9000자 자필원고 공개
이날 오전 관저에서 윤 대통령과 머물다 공수처까지 동행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관저에서 공수처 검사 2명이 체포영장을 설명하며 이를 집행하려 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자진 출석하겠다고 했지만,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며 “윤 대통령은 마지막 말씀으로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체포 직전 2분48초 분량의 대국민 담화를 영상으로 찍어 체포 뒤 변호인단과 대통령실을 통해 공개했다. 휴대전화로 급히 찍은 듯 화면은 흔들렸고, 화질은 거칠었다.
윤 대통령은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으려 불법 수사지만 공수처 출석에 응하기로 했다”며 “공수처 수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기관에 영장이 발부되고, 또 영장 심사권이 없는 법원이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는 걸 보며, 수사기관이 거짓 공문서를 발부해 국민을 기만하는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는 것이 개탄스럽다”며 “안타깝게도 이 나라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지층을 향해 “저를 응원하고 지지를 보내주신 것에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특히 우리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되고, 열정을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저는 이 나라의 미래는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새벽 1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2시 반에 깼다고 한다. 두 시간을 채 못 자고 잠을 설친 그는 햄샌드위치 10개를 직접 만들었고, 이를 관저 직원에게 나눠줬다. 관저 밖에선 오전 4시30분부터 국민의힘 의원이 집결했는데 윤상현 의원이 오전 4시쯤 가장 먼저 관저에 들어갔고, 이후 권영진·이상휘·박충권 의원이 오전 8시20분쯤 들어갔다.
체포영장 집행이 임박한 오전 10시 전후로 강명구·조지연·강승규 의원에 이어 나경원·김기현·박대출·김석기·이만희·이철규·정점식·유상범·정동만·박수영·박성민·이인선·김위상 의원 등 16명이 관저에 들어왔다. 참석자들은 “대통령에게 인사하러 가겠다고 했더니 공수처도 차벽을 허물고 우리를 들여보내줬다”고 전했다. 뒤이어 원외당협위원장 13명도 들어왔다. 한 참석자는 “관저 안으로 들어가는데 대통령실 행정관 40여 명이 눈시울을 붉힌 채로 복도에 도열해 있었다”고 전했다. 김건희 여사도 이때 잠시 방에서 나와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김 여사, 방에서 나와 인사 건네
윤 대통령은 이들에게 “고생이 많다. 당을 잘 이끌어 달라”며 한 명 한 명 악수를 나눴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는 대통령까지 했기 때문에 더 목표가 없다. 하지만 이 상태로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담담한 태도에 일부 의원은 눈물을 흘렸다. 바닥에 엎드려 오열하는 당협위원장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그를 일으켜서 안아주고 어깨를 두드렸다. 이용 전 의원도 울음을 터뜨렸다. 이 전 의원은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수행실장을 지내는 등 ‘호위무사’로 불렸다. 한 참석자는 “탁자 위에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지만 먹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숙연했고 큰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대통령이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대통령이 ‘당 지지율이 많이 올랐다. 정권 재창출을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관저를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토리’(반려견) 한번 보고 가자”고 말한 뒤 잠시 거실 2층을 들렀다고 한다. 공수처는 이날 오전 10시33분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