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나가" "한국말 해봐" 행인 봉변…尹집회장 '혐중론' 확산

17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이 구금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지지자들이 윤 대통령 지지·응원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17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이 구금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지지자들이 윤 대통령 지지·응원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 체포 이후 집회 참여자들 사이에서 도를 넘는 비난과 혐오가 쏟아지고 있다. 집회장 외에도 집단 괴롭힘이 발생하면서, 격화되는 갈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이 집행된 15일 오전 6시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보수 집회 군중 사이에서 “집회 내에 중국인이 있으니, 의심되면 검증해서 몰아내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 MAGA 변형인 ‘MKGA(MAKE KOREA GREAT AGAIN)’ 문구 적힌 모자를 쓴 중년 남성의 주장이었다. 이어 자신을 ‘애국시민’으로 밝힌 남성도 “민증(주민등록증) 까라고 하면 된다. 빨갱이들 색출하자”고 동조했다.

 
군중 속에 있던 30대 여성 A씨는 갑자기 이들의 검증 대상이 됐다. 외모가 중국인 같다는 이유였다. A씨는 주민등록증 공개와 한국말을 하라고 강요받았다. 그럼에도 일부 군중들은 “프락치다” “말투가 어색하니 조선족”이라며 A씨를 몰아세우고 욕설을 퍼부었다. A씨는 “윤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왔는데, 당혹스럽다”고 “이건 애국시민의 태도가 아니다”고 전했다.

 
한남동 주민 B씨는 출근하다가 길을 가로막은 시위대에 짜증을 냈다가 곧장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B씨가 주민등록증 공개를 거부하자, 시위대들은 B씨에게 “태생부터 빨갱이” “공산주의자”라고 외쳤다. B씨는 “하루아침에 부모님이 공산당원이 되어버렸다. 홍위병하고 뭐가 다르냐”며 “이건 시위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15일 오전 6시 30분쯤 한남동을 지나던 중국인 2명은 탄핵 반대 집회 참여자에게 둘려 쌓였다. 집회 참여자들은 이들에게 “중국인 꺼져라”라고 외쳤고, 일부는 욕설을 하며 위협했다. 이찬규 기자

15일 오전 6시 30분쯤 한남동을 지나던 중국인 2명은 탄핵 반대 집회 참여자에게 둘려 쌓였다. 집회 참여자들은 이들에게 “중국인 꺼져라”라고 외쳤고, 일부는 욕설을 하며 위협했다. 이찬규 기자

중국인에 욕설과 위협을 가하는 등 폭력도 발생하고 있다. 이날 오전 6시 30분쯤 한남동을 지나던 중국인 2명은 탄핵 반대 집회 참여자에게 둘러싸였다. 집회 참여자들은 이들에게 “중국인 꺼져라”라고 외쳤고, 일부는 욕설을 하며 위협했다. 결국 경찰 10여명이 출동해 이들을 구조했고, 경찰차를 태워 자리에서 벗어났다. 중국인 2명은 집회 참여자가 아닌 이곳을 지나던 행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한남동 카페에 선 한 보수 집회 참여자가 말레이시아인에게 다가가 “말레이시아에 중국인이 많다”고 따지기도 했다.

 

지난 5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탄핵찬성 집회에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캡처

지난 5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탄핵찬성 집회에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캡처

윤 대통령 지지 집회에서 혐중론이 퍼진 건 일부 계엄 지지세력이 유튜브에서 ‘중국인, 중국 정부가 2020년 21대 총선 등 부정선거에 개입했다’는 등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일부 여당 의원들도 이같은 음모론에 편승해 갈등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은 “중국인들이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한 게 맞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탄핵찬성 집회에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혐오 논란에 현재 김 의원의 게시글은 삭제된 상태다.

 
반면 반윤 집회에선 ‘나이’를 주제로 상대 진영을 공격한다. 탄핵 반대 집회 참여자 대부분이 노인이기 때문이다. 반윤 집회 일부 참여자들은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돌아가실 때 된 늙은이들” “추하게 늙었다” 등으로 비난했다. 20·30대로 보이는 보수 집회 참여자들에겐 “벌써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16일 한 여성이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울 서부지법 앞에 있던 화환 배송기사에게 “중국인이냐”고 따졌고, 배송기사는 “4대째 서울 사람이다”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이찬규 기자

지난 16일 한 여성이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울 서부지법 앞에 있던 화환 배송기사에게 “중국인이냐”고 따졌고, 배송기사는 “4대째 서울 사람이다”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이찬규 기자

상대 진영을 향한 혐오가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지난 16일 한 여성이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 앞에 있던 배송기사에게 “중국인이냐”고 따졌고, 배송기사는 “4대째 서울 사람이다”라고 맞받아쳤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위협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대비된다”며 “타인을 존중하는 집회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신뢰가 낮아 음모론과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 군중효과까지 더해져 갈등이 격화됐다”며 “음모론과 혐오가 확산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