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3시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해 청사 내로 난입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는 긴말이 필요 없다. 사법부 법원을 불법 폭력 점거하고 기물을 파손한 행위에 대해 응분의 법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당시 현장에서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남은 의문이 있다. 경찰은 어떻게 극렬 지지자의 난입을 불과 20분 만에 속수무책으로 허용했나. 경찰 관계자는 “다수의 시위대가 돌을 던지고 월담을 하면서 갑작스럽게 몰아쳐서 대처가 어려웠던 것 같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나 18일 오후 영장실질심사 때부터 강성 지지자의 불법 폭력 행위의 위험 징후는 여러 번 있었다. 서부지법 앞에 결집한 일부 극렬 지지자들은 윤 대통령이 출석한 가운데 열린 심문이 끝날 즈음부터 “법원에 진입하자”며 불법 행위를 선동했다. 오후 6시쯤 전원 현행범으로 체포됐지만 22명이 서부지법 후문 담벼락을 넘은 게 시작이었다. 심문 이후 윤 대통령 호송차량이 떠난 직후 공수처 차량이 타깃이 됐다. 공덕오거리 5차선을 점거한 지지자들은 지나가는 차를 일일이 붙잡고 ‘불법 검문’을 했다. 무고한 시민이 10분 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4만명 시위대의 위력 때문인지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
그 사이 지지자들은 결국 공수처 차량을 발견해 순식간에 에워쌌다. 스티커로 차량 앞 유리를 도배하고, 옆에서 좌우로 밀며 전복 시도를 하는 등 각종 위협에 1시간가량 노출된 공수처 직원들은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경찰은 뒤늦게 기동대를 투입했지만 차량은 시위대에 타이어가 펑크나는 운행 불가 상태가 됐다. 윤 대통령 호송차 뒤에도 차량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도로 통제를 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던 일로 보였다. 이런 불법 경험이 쌓이면서 일부 시위대는 ‘공권력이 별것 아니다’라는 자신감을 얻었을지 모른다.
이런 사전 징후들을 보면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에 비슷한 성격의 작은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법원 난입 사태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최악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자정을 넘기며 수천 명이 넘던 경찰기동대 인력이 빠진 뒤 서부지법 후문은 소수 경력만 배치됐다. 반면에 서부지법 주변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여전히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18일 2시 59분쯤 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진 지 6분 만에 후문이 뚫렸다. 삽시간에 수백명의 시위대가 경내로 난입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바리케이드와 방패가 탈취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둔기 등으로 현관 철창과 유리문 등을 깨고 3시 21분 청사 내부로 들어갔다. “빨갱이 판사를 찾겠다”며 6~7층까지 온갖 법원 내 기물을 파손하며 쳐들어갔다. 다행히 난입 당시 영장 발부 판사가 법원 내부에 없어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법원 난입 사태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채증 등 절차를 거친 뒤 검거해야 해서 한꺼번에 밀고 들어온 이들을 상대로 빠르게 물리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난입 시위대 규모와 물리적으로 짧은 기습 시간 때문에 불가항력이었다는 해명이다.
경찰이 애초에 압도적 인원을 배치해 경계하지 않은 건 시위대의 성격 등을 오판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청사에 난입한 시위대 상당수는 이른바 60·70대 태극기 부대가 아니라 건장한 20·30 남성들이었다. 이들은 실시간 유튜브를 통해 불법 난입 사태를 생방송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18일 서부지법 앞에서 만난 한 젊은 남성은 “우리가 평화적으로 대응해서 대통령이 체포됐다. 밀어붙이자”며 최전방에서 경찰과 1시간 넘게 몸싸움을 벌였다. 이후 19일 새벽 법원 난입 현장에서도 목격됐다.
법원이 시위대에 불법 점거된 뒤 뒤늦게 1400여명의 경력을 투입해 46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한 서울경찰청은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추가 불법 행위자와 교사·방조자를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공언했다. 마스크를 끼고 신원을 숨긴 상당수를 모두 검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한번 추락한 공권력의 위상이 쉽게 회복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서부지법 난입 사태도 사전 철저한 대비만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