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수출 호재' 옛말…조선·車·기계 빼곤 모두 '흐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뉴시스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뉴시스

20일(현지시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본격 출범에 따라 국내 전 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당분간 고환율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조선·자동차·기계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 산업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는 ‘고환율=수출 호재’와 같은 과거 공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주요 산업별 협회 1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고환율 기조가 주요 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 결과를 20일 발표했다. 향후 전망을 기상도 형식으로 표현했을 때 조선·자동차·기계산업 등 3개 산업만 ‘대체로 맑음’이었다. 나머지 바이오·반도체·배터리·철강·석유화학(석화)·정유·디스플레이·섬유패션·식품산업 등 9개 산업은 모두 ‘흐림’으로 전망됐다. 고환율 흐름 속에서 ‘맑음’으로 전망되는 산업은 하나도 없었다.

최근 고환율 기조에 따른 산업별 기상도.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최근 고환율 기조에 따른 산업별 기상도.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지금도 어려운 석화·정유…‘엎친 데 덮친 격’

원재료 수입 비중이 큰 산업에 고환율은 직격탄이 되고 있다. 여기에 업황까지 부진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석화 산업이 대표적이다. 석화는 기초 원료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데 원화값이 떨어지면 나프타 등 원재료 구입 비용이 뛴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업황이 좋을 때는 환율 상승이 석유화학 매출 증가 및 무역수지 개선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글로벌 공급과잉에 따른 수급 불균형이 심한 상황에선 환율 상승의 긍정적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정유 산업도 고환율이 지속되면 환차손이 커질 수 있다. 원유 수입 시 은행이 우선 수입처에 대금을 지급하고, 일정 기간이 흐른 뒤 정유사가 은행에 대금을 상환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 산업도 원료의약품의 수입 의존도가 높고, 해외 임상 시험이 활발히 이뤄지는 만큼 고환율에 따른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반도체, 제조원가·해외투자비 상승 ‘이중고’

반도체·배터리 등 해외 투자 비중이 높은 산업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우선 반도체 산업은 제조원가와 해외투자비가 함께 상승하면서 이중고를 겪을 전망이다. 고종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실장은 “반도체 분야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율이 30% 수준인 만큼 환율이 오르면 생산 원가가 증가하고, 국내 주요 기업이 미국 등 해외 반도체 제조 공장 설립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달러 결제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상쇄된다”고 진단했다.

특히 배터리 산업은 리튬·흑연 등 핵심 원자재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문제다. 김승태 한국배터리협회 정책지원실장은 “고환율에 따라 시설 투자 비용과 수입 원자재 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며 “업계에선 광물과 배터리의 판매가격을 연동하는 계약을 통해 환손실을 만회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디스플레이·섬유패션·식품산업도 고환율 영향을 피해갈 수 없을 전망이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현대자동차 수출 부두의 모습. 전민규 기자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현대자동차 수출 부두의 모습. 전민규 기자

조선·자동차도 고환율 장기화 시 ‘역풍’

‘수혜 산업’으로 꼽히는 조선, 자동차, 기계 산업도 안심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고환율에 따른 매출 증대 효과가 기대되는 건 사실이다. 조선업은 지난해 1~3분기 전체 수주량의 96.3%가 수출 물량일 정도로 수출 비중이 크다. 또 계약 후 대금의 상당량이 선박 인도 시점에 결제돼 환율 상승에 따른 차익이 기대된다. 국내 생산의 67%를 수출하는 자동차 산업, 수입 원자재 의존도가 적은 기계 산업도 이점을 누릴 수 있다.

문제는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다. 조선사의 경우 해외 기자재 사용률과 라이선스 비용 상승 등으로 환율 상승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자동차 역시 부품 수입가, 에너지 비용, 해상운임비 상승 등이 원가 상승 압박으로 돌아올 수 있다. 기계 업계에서도 “(장기화 시) 불황형 흑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이제 막 출범한 트럼프 2기에서 관세인상, 금리 인하 속도 조절 등이 시행되면 당분간 고환율이 지속될 것”이라며 “국내 경제가 고환율 파고에 휩쓸리지 않게 기업의 노력과 더불어 미국 등 주요국과 통화 스와프라인 확대 추진, 환율 피해 산업에 긴급 운영 자금 및 금융지원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