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충남 서천군 비인면 서서천장례문화원. '12·3 비상계엄'을 모의한 혐의로 기소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이 장례식장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서천군수를 만났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천=김준희 기자
‘12·3 비상계엄’을 모의한 혐의로 지난 10일 재판에 넘겨진 노상원(63·육사 41기)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고향인 충남 서천에서 '민원 해결사'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오후 3시쯤 서천군 비인면 서서천장례문화원. 주차장엔 장례식장 로고가 찍힌 승합차 한 대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서천군 등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서서천장례문화원 측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김기웅 서천군수를 수차례 접촉했다. 서서천장례문화원 대표 양모씨는 2023년 11월 30일 서천군에 장례식장(대지 면적 5369㎡, 건축 면적 1098㎡)을 동물 건조·장례시설 및 동물 전용 납골시설로 건축물 용도를 변경해 달라고 신청했다.
'12·3 비상계엄'을 모의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민간인 신분인 노 전 사령관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도와 포고령을 작성하는 등 계엄을 사전에 기획한 혐의로 지난 10일 구속 기소됐다. 뉴스1
노 전 사령관은 양 대표 부탁을 받고 2023년 하반기~2024년 초 서천에서 활동하는 지인 5~6명과 함께 군청 집무실과 관내 식당 등에서 최소 서너 번 김 군수를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서천군은 지난해 1월 17일 주민 반발 등을 이유로 업체 측에 불허를 통보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건축법·동물보호법, 주민과의 합의 사항 등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이에 서서천장례문화원 측은 지난해 4월 충남도 행정심판위원회에 건축물 용도 변경 불허가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충남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해 6월 서서천장례문화원 측 청구를 기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김 군수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현재 대전지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15일 충남 서천군 비인면 한 도로변에 '마을 코앞에 동물사체건조장이 웬말이냐! 소송을 당장 철회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다. 서천=김준희 기자
주민 반발은 여전하다. 이날 서서천장례문화원으로 가는 도로변엔 ‘마을 코앞에 동물사체건조장이 웬말이냐! 소송을 당장 철회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부꼈다. 주민 윤모(70·여)씨는 “노 전 사령관이 서천군에 (용도 변경) 허가를 내달라고 한 게 사실이라면 우리한테는 적”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반대 이유를 묻자 그는 “동물 화장장이 들어오면 냄새 나는 것은 둘째치고, 땅값·집값이 떨어져 사람은 못 산다”며 “주민들이 군청 앞에서 시위도 하고 대규모 집회도 열어 군수가 불허했다”고 했다.
서천초·서천중을 졸업한 노 전 사령관은 고향에서 ‘노 장군’으로 통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점집을 운영한 노 전 사령관은 서천읍에서 홀로 사는 노모 집을 자주 찾아 효자로 소문났다고 한다.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군청 전경. 서천=김준희 기자
노 전 사령관의 한 지인은 중앙일보에 “노 장군은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볼 겸 재작년부터 매주 서천에 내려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에 내려오면 또래 대여섯 명과 어울렸다”며 “이 중 3명 정도는 군수와도 친분이 있어 장례식장 관련해 군수에게 부탁할 때도 함께 만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서천군 안팎에선 “노 전 사령관이 장례식장 측으로부터 민원 성사 시 모종의 대가를 약속받은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돈다. 이에 대해 양 대표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노 전 사령관은 대기업 임원 출신인 친구 친형으로, 1년여 전 알게 돼 몇 번 만났다”며 “노 전 사령관뿐 아니라 1000명이 넘는 지인이 서천군에 탄원서를 넣고, 군수에게 용도 변경을 해줘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 전 사령관에게 금전적 이익이나 지분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한 적 없다”며 “평소 소탈하고 조용한 분이어서 계엄에 관여했다고 해 의아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지난 15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거리. 구속되기 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서천에 홀로 사는 노모를 돌보기 위해 매주 고향을 찾았다고 한다. 서천=김준희 기자
일각에선 “노 전 사령관이 국민의힘 소속인 김 군수에게 장례식장 민원을 들어주면 나중에 공천 등 정치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 서천군 간부 A씨는 “그 양반(노 전 사령관)이 군수를 도와줄 게 뭐가 있냐”며 “서천군 계획위원회에서 관련 법률에 따라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 군수 측 관계자도 “군수는 민원인이 만나자고 하면 만날 수밖에 없다”며 “당시 내부에서도 ‘법적 요건이 맞지 않은 데다 특정인 이익을 위해 주민 반발이 큰 사업을 무리해서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선을 그었다.
서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