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칠도 몰래 했는데 욕먹었다, 튀르키예 목욕탕 '민망 사건'

튀르키예 공중목욕탕 하맘. 청동으로 만든 수도꼭지와 물 바가지를 이용해 목욕을 즐긴다. 울루다으에서 발원한 물을 온천수로 쓴다. 여탕은 종교적인 이유로 탕을 두지 않는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튀르키예 공중목욕탕 하맘. 청동으로 만든 수도꼭지와 물 바가지를 이용해 목욕을 즐긴다. 울루다으에서 발원한 물을 온천수로 쓴다. 여탕은 종교적인 이유로 탕을 두지 않는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튀르키예에서 가장 물이 좋다는 고장, 북서부의 부르사(Bursa)에서 한 달을 보냈다. 부르사 곁에는 울루다으(Uludağ, 2543m)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다. 겨우내 쏟아지는 눈 덕분에 울루다으에서는 사계절 맑은 물이 흘러 내려온다. 산 이름을 그대로 딴 생수 브랜드도 있다. 부르사는 로마 시대부터 온천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남편의 여행

부르사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로 통하는 오스만가지. 아직도 나무를 때는 집이 많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부르사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로 통하는 오스만가지. 아직도 나무를 때는 집이 많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이스탄불 남쪽에 위치한 부르사는 14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첫 수도였다. 유네스코가 2014년 도시 전체를 세계유산에 지정하면서 부르사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화석이 됐다. 거대한 성벽 아래 촘촘히 뻗어 있는 낡은 골목을 오갈 때마다 오스만 제국 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우리 부부는 부르사에서도 가장 옛 동네로 통하는 ‘오스만가지(Osmangazi)’에서 한 달을 머물렀다. 숙소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량도 많고 방값도 저렴했다. 이스탄불처럼 외국인 여행자가 많은 도시가 아니어서, 현지 분위기를 즐기기에도 좋았다.  

문제는 낡고 오래된 숙소였다. 나무를 때는 집이 많아 골목 안이 매캐한 연기로 자욱했다. 유튜브에서 ‘연탄 가는 법’이라도 검색해봐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우리는 300달러(약 43만원)에 가스보일러를 쓰는 신축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거실은 물론 현관‧침대 앞까지 양탄자가 깔려 있어서 아늑하기까지 했다.

이스켄다르 케밥은 부르사의 자존심이다. 층층이 쌓아 올린 양고기를 천천히 돌려서 구운 뒤, 버터 기름을 부어서 낸다. 한국인 입맛에는 다소 느끼할 수도 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이스켄다르 케밥은 부르사의 자존심이다. 층층이 쌓아 올린 양고기를 천천히 돌려서 구운 뒤, 버터 기름을 부어서 낸다. 한국인 입맛에는 다소 느끼할 수도 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동네 분위기처럼, 부르사는 음식 문화도 예스러웠다. 부르사에서 꼭 맛봐야 하는 음식이 튀르키예의 국민 케밥으로 통하는 ‘이스켄다르 케밥’이다. 잘 구운 양고기를 얇게 썬 뒤 펄펄 끓는 버터기름을 부어 내는 음식인데, 19세기 부르사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한국인 입맛에는 다소 기름진 음식인데, 콜라나 탄산수와 함께 먹으니 느끼함을 덜 수 있었다. 우리 돈으로 1인분에 2만원꼴이다.


유서 깊은 비단 시장도 있다. 부르사는 오스만 제국 시절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해서 예부터 비단 산업이 발달했다. 코자 한(Koza Han)이란 이름의 비단 시장은 15세기부터 장사를 이어온다. 아내 은덕의 실크 사랑은 이곳에서도 여전했다. 은덕은 신혼여행으로 이스탄불에 갔을 때 보따리장수처럼 스카프를 70장이나 샀던 전력이 있다. 결혼식에 온 하객들에게 답례품을 준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보물찾기하듯 예쁜 스카프를 고르던 그 반짝이면서 탐욕 가득한 눈빛을 나는 여태 잊지 못한다. 이번에는 달랐다. 은덕은 코자 한을 두 시간이나 뒤진 끝에 달랑 두 장(1장 약 5만원)의 스카프만 건지고 쇼핑을 마쳤다. 은덕이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후 그날처럼 우울한 표정을 한 적이 없었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아내의 여행

로마 시대부터 운영 중인 하맘. 여탕에는 몸을 담글 탕이 없지만, 남탕에는 약 2m 깊이의 거대한 탕이 중앙에 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로마 시대부터 운영 중인 하맘. 여탕에는 몸을 담글 탕이 없지만, 남탕에는 약 2m 깊이의 거대한 탕이 중앙에 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온천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며 더 좋아하게 됐는데, 이 사랑이 앞으로도 꺾이지 않을 거 같다. 온천은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드는 한겨울에 더 만족도가 높다. 부르사의 3월은 최저 기온이 5도를 밑돌 만큼 쌀쌀했는데, 마침 울루다으 동쪽 체키르게(Çekirge)에 튀르키예식 공중목욕탕 ‘하맘(Hamam)’이 있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돔 건물이 하맘의 상징인데,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거품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목욕탕이 아니라 미술관에서 몸을 씻는 기분이었다. 우윳빛 대리석이 사방에 깔렸고, 거대한 사자상의 입에서 온천수가 쏟아져 나왔다. 수도꼭지는 물론 물을 담는 바가지조차 구릿빛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나 어울릴 법한 대리석 의자에 살포시 앉아 목욕을 시작했다. 한데 어딘가 불편했다. 안타깝게도 하맘에는 내 한 몸 뉠만한 탕이 없었다. 고여 있는 물을 부정하게 여기는 이슬람의 문화 때문이다. 로마 시대의 유산인 남탕에는 거대한 욕탕이 있다는데, 후대에 만든 여탕 하맘에는 물을 담아 놓는 탕이 따로 없었다.

비누칠도 맘대로 하지 못했다. 성기를 타인 앞에서 노출하는 걸 죄악시하는 이슬람 율법 때문이다. 나는 신체의 중요 부위를 수건으로 가린 채 손만 꼼지락 거리며 목욕을 했다. 애석했다. 몸도 못 담그고, 때도 맘대로 못 밀면 대체 어디서 목욕의 쾌감을 얻으라는 말인가.

민망한 사건도 발생했다. 바가지로 물을 끼얹으며 몸 깊숙한 곳을 닦고 있는데, 어느 순간 매서운 눈빛이 느껴졌다. 현지 아주머니가 물을 튀기지 말라며 성을 냈다. 형제의 나라에서 싫은 소리를 들으니 서운함이 배가 됐다. 나는 잔뜩 주눅이 든 상태로 씻는 듯 마는 둥 목욕탕을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했다. 부르사 물은 정말 최고였다. 최고급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바른 듯한 온몸이 매끈했다.

부르사 최고봉 울루다으(2543m). 정상부에 천연 설질로 유명한 스키장이 있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카를 타면 손 쉽게 울루다으의 설경을 담을 수 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부르사 최고봉 울루다으(2543m). 정상부에 천연 설질로 유명한 스키장이 있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카를 타면 손 쉽게 울루다으의 설경을 담을 수 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울루다으는 11월 초부터 3월 말까지 눈이 쏟아진다. 해서 천연 설질을 즐기려는 스키어들로 겨우내 산이 붐빈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길다는 울루다으 국립공원 케이블카(9㎞)를 타고 설원의 장관을 누렸다. 발아래로 펼쳐진 침엽수림의 눈꽃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한데 외국인은 3배 가까운 케이블카 이용료를 치러야 했다(튀르키예인 약 1만원, 외국인 약 3만원). 설원을 누비다 보니 어느새 체온이 뚝 떨어지며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하맘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온몸이 노곤해질 때까지 온천을 즐겼다.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튀르키예 부르사 한 달 살기
부르사에서 한 달을 머문 숙소. 화려한 문양의 담요와 카페트로 내부를 장식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부르사에서 한 달을 머문 숙소. 화려한 문양의 담요와 카페트로 내부를 장식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비행시간 : 12시간(이스탄불 공항에서 버스로 2시간 30분 이동)
날씨 : 스키와 온천을 즐기려면 겨울 추천
언어 : 튀르키예어
물가 : 서울의 3분의 2 수준
숙소 : 400달러(약 58만원) 이상(시내 중심, 집 전체)

맛있는 이야기 '홍콩백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