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의 독특한 문화 ‘챌린지’ 선두주자 올라서며 팔로워 급증
인플루언서도 평범한 직장인이자 아버지…“육아가 제일 소중”
동영상 플랫폼 틱톡 팔로어만 1700만 명, 인스타그램은 100만 명이다. 태권도외교학과 출신인 그는 태권도를 해외에 알리겠다며 잦은 해외 생활을 했는데, 귀국 후 결혼해 아내와 영어학원을 개업했다. 그때 나이가 30대 초반. 그러고도 5년 뒤 틱톡에 올린 춤추는 영상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원래 활동적인 걸 좋아했지만 예능 쪽으로 빠질 줄은 몰랐어요.”
그는 “지금은 제 체질에 맞는다는 걸 알지만, 시작할 때는 어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가장의 무게가 있었죠”라고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틱톡은 10·20대의 전유물이다. 10초에서 20초 사이의 짧은 영상(숏폼)을 올리고 팔로어들과 공유한다. 이 플랫폼에서 인기의 척도는 ‘챌린지’라는 문화다. 누군가 특정한 춤이나 행동을 하면 너도나도 따라 하는 것이다. 최근 오징어게임2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틱톡에는 오징어게임2의 게임인 공기놀이를 하는 게 챌린지로 유행이다. 수요자도 공급자도 모두 10·20대다.
신사마는 그런 틱톡에 30대 중반의 나이에 뛰어 들어 각종 챌린지의 선두주자로 올라섰다. “챌린지를 주도하면 팔로어가 확 느는 구조예요. 춤을 그냥 잘 추기보다 쉬우면서 잘 추는 것처럼 보이는 안무를 개발하려고 애썼죠. 그래야 모두 따라 하기 때문이에요.”
활동명을 ‘신사마’로 정한 이유가 뭔가? 과거 일본에서 〈겨울연가〉가 인기를 끌 때 배용준에게 붙은 애칭과 비슷해 보이는데.
“맞다. 워킹 홀리데이를 위해 2005년 호주에 갔을 때 거기서 만난 일본인 친구들이 배용준 씨의 ‘욘사마’처럼 제게 붙여준 애칭이다. 그때가 겨울연가가 끝난 지 3년이 지난 무렵이었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선 배용준의 여운이 길게 남았던 듯하다. 어쨌든 그 후로 인플루언서를 시작할 때 활동명을 뭐로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신사마로 불렸던 게 기억도 나고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들어서 쓰게 됐다.”
결혼 후 영어학원 하다가 틱톡 진출한 가장
원래 엔터테인먼트 쪽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그건 아니다. 호주로 떠난 건 해외에 태권도를 알리고 도장을 차리려는 목적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태권도 사범 생활을 길게 했을 뿐 인플루언서와 같은 예능 쪽에 몸담을 거라고는 생각한 적 없다.”
그렇다면 인플루언서를 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있었다던지?
“그것도 사실 애매하다. 호주에서 매콰리대학에 유학 중인 아내를 처음 만나고 서른 살이 되던 해에 결혼했다. 경기 여주에 살림을 차렸는데 가정을 유지하려면 태권도 사범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 학원을 차리게 되더라. 5년째 접어들어도 사실 잘되는 편이 아니었다.”
그때 돌파구가 인플루언서라니… 굳이 따지자면 사업보다 인플루언서로 뜨는 게 더 어려울 텐데?
“솔직히 말하면 계기도 특별한 건 없다. 수업 중에 한 학생이 자기가 오늘 틱톡에 영상을 올렸는데 ‘좋아요’ 500개를 받았다고 자랑하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못 받을 걸요’라고 하더라. 그런 말에 발끈한 건 아니었지만 흥미가 생겼다. 그날 수업을 다 마치고 혼자 교실에 남아 찍어봤는데 반응이 엄청나게 좋았다.”
그때 무슨 영상을 촬영했나?
“‘손댄스’라고 해서 손으로 추는 춤이다. 즉흥적이기도 했고 여건상 당장 보여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어쨌든 이후에도 영상을 몇 개 올렸고 팔로어가 늘기 시작해서 저도 진지하게 임하게 됐다.”
그래도 사업과 인플루언서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집에 가면 육아도 해야 할 테고.
“그 직후에 코로나19가 터져서 반강제로 인플루언서가 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원생이 줄고 있어서 아내 혼자 학원을 운영해도 될 수준이어서, 저는 아예 인플루언서 활동에 전념했다.”
30대 중반의 가장이 가정을 지키려고 춤추는 인플루언서가 됐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저도 필사적이었다. 2019년 후반이었는데, 유튜브가 대중의 삶에 파고들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해도 틱토커와 같은 음악 플랫폼은 아무래도 공급자나 시청자 모두 연령대가 낮으니까. 그래서 세운 나름의 전략이 시청자에 대한 공부였다. 예컨대꼭 춤을 잘 추는 영상만 보려 할까? 못 추는 사람도 나름 느낌 있게 추는 모습은 분명 소구력 있지 않을까? 거기서 시작한 게 이모지 댄스라고, 화면에 이모지를 몇 개 띄워 놓고 거기에 맞는 동작의 춤을 추는 것이다. 그때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는 인상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그때 팔로어가 몇 명 정도였나?
“3개월 만에 500만 명을 기록했다.”
그 정도 숫자가 되면 솔직히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이 안 잡힌다.
“제 팔로어들은 대부분이 해외 팬이다. 동남아가 제일 많고 남미 그리고 미국 순이다. 그래서 많이 증가할 때는 하루에 80만 명도 유입된다.”
춤만으로 팬덤을 계속 유지하긴 어려울 텐데?
“일단 춤을 주력으로 가고는 있다. 해외 팬이 많다보니 주로 빌보드 차트를 들여다보며 누가 인기 있는지, 어떤 노래가 유행인지 살핀다. 이 과정에서 해외 가수들과 네트워크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때 그들과 컬래버 작업을 하면 파급효과가 엄청나게 크다. 이 외에는 영화든 드라마든 인기를 끄는 작품을 패러디하는 쪽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지금은 변화 앞두고 예열하는 시기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별로 어색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노래를 부르거나 춤추는 걸 즐기긴 했다. 솔직히 노는 분위기를 즐기기도 하고.”(웃음)
해외에서 인기가 더 많아서 생기는 애로사항은 없나?
“일단 한국과 해외에서 유행하는 게 너무 다르다. 국가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코드와 기준이 다른 듯 하다. 그러다 보니 순차적으로 국가별 콘텐트를 기획하게 되는데, 간단하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좋은 점이라면 해외에서 열리는 기업 행사나 시상식에 가면 국빈 대우를 받는 거다. 의전부터 해서 시내를 나갈 때도 경호를 붙여주더라.”
영감은 어떻게 얻는가?
“해외 크리에이터들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가장 집중해서 관찰하는 건 음악이나 편집 스타일이다. 대중은 익숙한 걸 찾으면서도 반복되는 걸 싫어하는데, 해외 크리에이터들은 비슷한 주제로 가되 그 안에서 스타일을 미세하게 바꾼다. 그런 부분을 파악한 뒤 제 스타일대로 영상에 녹여낸다.”
문화 생활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한다는 예능인들도 많던데.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제 개인 시간은 모두 육아에 올인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을 챙겨볼 여유가 없다.”
내색은 안 해도 인플루언서로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상당할 거 같다.
“원래 틱톡에 주력하면서 말 그대로 영상을 쏟아냈다. 그 덕에 팔로어도 상당히 늘었고 인지도도 올라가서 충분히 가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엔 유행이 너무 빠르게 번졌다가 사흘이면 거품처럼 꺼져서 정신이 없다. 예전에는 최소 2주는 이어졌다. 예컨대 손가락으로 브이(V) 모양을 거꾸로 하는 ‘갸루피스’가 유행이지 않았나. 그게 SNS에서 한 달은 인기였고 그래서 방송가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게 안 된다. 뭐가 유행이었다가 조금만 지나면 다른 게 또 유행이다. 말하자면 사흘 전 아이템이 오늘은 한참 철 지난 추억팔이로 전락하는 거다. 이 주기를 혼자서 온전히 따라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틱톡은 유튜브와 달리 조회수로 수익이 나는 구조가 아니어서 보상심리도 적을 듯하다.
“그래도 해외 인지도가 있으니 행사도 많이 들어오고 글로벌 기업의 광고도 붙는다. 하지만 위로 더 올라가려면 활동 무대를 틱톡에 한정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활동도 병행한다.”
인스타그램은 일상을 담은 사진이나 릴스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유튜브는 성격이 다르지 않나? 소위 말해서 각을 잡고 뛰어들어야 하는 플랫폼인데?
“그렇다. 숏코미디나 드라마 등 최소 8분 이상의 영상을 제작해야 하는데, 틱톡과 달리 혼자 힘으로 밀어붙이긴 어렵다. 그래서 국제소셜인플루언서협회와 함께 준비하고 있다. 기획도 기획이지만 협회 회원들을 소개받아서 협업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연기 쪽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변화를 모색하는 시기 아닌가.
“맞다. 원래는 콘텐트만 미친 듯이 찍어냈다면 지금은 물량보다는 어떻게 독자적인 콘텐트를 제작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다. 거창하게 기획하면 한도 끝도 없이 돈이 들고, 그렇다고 자금을 아끼자니 원하는 수준의 퀄리티가 안 나올 거 같고. 이 고민도 슬슬 정리해야 한다.”
팔로어가 곧 본인 힘이라고 착각하면 안 돼
연말 시상식이나 행사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
“작년 11월에 아시아모델어워즈에 다녀왔다. 인플루언서 부문 아시아스타상을 받았는데, 해외 인지도가 반영된 것 같다. 그 외에 봉사활동도 있었고 기부 행사도 다녀왔다.”
인플루언서의 일상이 어떤지 대중이 많이들 궁금해한다. 실제로는 어떤가?
“전형적인 가장이다. 출근하기 전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서울로 출퇴근한다. 업무의 대부분은 미팅이고 행사인데, 이것도 직장인 사이클과 다를 게 없다.”
가장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자신이 인플루언서라며 사고 치는 경우도 많은데.
“인플루언서의 척도는 팔로어 숫자여서 대중적 인지도가 곧 직업의 성취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팔로어가 늘어날수록 자아도취에 빠지기 쉽다고 할까. 제 경우 처음부터 주변에서 들었던 얘기가 ‘초심을 잊지 말라’는 거였다. 그리고 언제든 실수 한 번으로 잘못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새기려 노력했다. 특히 제 아이가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거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사회인으로 성장할 텐데 항상 아버지로서 책임감을 생각하고 촬영에 임한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는가?
“원래는 레저스포츠를 좋아했다. 계절별로 여름엔 수상스키를 타고 겨울엔 스키를 즐겼다. 코로나19가 시작된 뒤로 멀리하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사마라는 브랜드를 통해 확장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
“궁극적인 목표는 인플루언서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거다. 앞으로 인플루언서가 직업군으로 더 확대될 게 분명한데, 5년 뒤 어떤 플랫폼이 주류가 돼 있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세상이다. 이런 과도기적 시기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인플루언서는 되고 싶은데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성향과 기질에 맞는 플랫폼과 콘텐트를 추천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