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할 때마다 꺼내볼 드라마”…임지연이 ‘옥씨부인전’으로 얻은 것

임지연은 26일 종영한 JTBC ‘옥씨부인전’에서 옥씨 가문의 아씨 태영으로 살아가는 기구한 운명의 노비 구덕이를 연기했다. 사진 아티스트컴퍼니

임지연은 26일 종영한 JTBC ‘옥씨부인전’에서 옥씨 가문의 아씨 태영으로 살아가는 기구한 운명의 노비 구덕이를 연기했다. 사진 아티스트컴퍼니

“파란만장한 구덕이의 삶을 살면서 힘들었어도 얻은 것이 많습니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닮고 싶었어요. 2024년의 전부였던 구덕이와 헤어진다는 생각에 슬프고 애틋합니다.”

 
배우 임지연(35)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JTBC 토일극 ‘옥씨부인전’ 종영 소감으로 이같이 말했다. 그는 26일 16부작으로 막을 내린 ‘옥씨부인전’에서 아씨 옥태영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노비 구덕이를 연기했다.

구덕이는 거짓인생을 살면서도 진짜 옥태영의 꿈인 외지부(조선시대 변호사)가 되어, 아씨 대신 얻은 삶을 약자를 위해 쓰고자 한다.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임지연은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연진이로 미움을 받았는데, 구덕이로는 진심어린 걱정을 받아 색다른 기분을 느꼈다”고 전했다.

구덕이는 자신을 괴롭히는 주인인 소혜 아씨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몰래 장터에 나와 장사를 하는 등 노비 신분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으려 한다. 사진 JTBC

구덕이는 자신을 괴롭히는 주인인 소혜 아씨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몰래 장터에 나와 장사를 하는 등 노비 신분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으려 한다. 사진 JTBC

 
드라마는 1화(2024년 11월 30일) 4.2%의 시청률로 시작해 10회에는 11%를 돌파하는 시청률 상승곡선을 그렸고, 넷플릭스에서도 방영 내내 한국 TV쇼 부문 톱10을 유지했다. 미주와 유럽, 오세아니아 지역 글로벌 OTT 서비스인 코코와플러스(KOCOWA+)에서도 ‘옥씨부인전’은 방영 첫 주부터 현재까지 드라마 부문 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임지연은 무엇보다 부모님 반응에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버지가 연기를 칭찬해주신 적이 없다. 내가 출연했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안 보신다. 그런데 ‘옥씨부인전’을 보고 나선 ‘지연이가 연기를 너무 잘한다. 내가 본 최고의 사극이다’라고 해주셔서 정말 뭉클했다.” 공개 연애 중인 남자친구인 배우 이도현도 본방사수를 하며 “잘했다”고 응원해줬다.


“사극 두려움 이겨냈다”

사실 임지연 본인도 이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였다. 촬영은 지난해 8월 15일 종료됐으나, 임지연은 차기작 촬영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시청자 입장에서 ‘옥씨부인전’을 몰입해 감상했다. 제작진인 진혁 감독과 박지숙 작가와는 감상평을 수시로 공유하며 소통했다. 

그가 기획 단계부터 촬영, 방영까지 ‘옥씨부인전’에 온마음을 쏟은 것은 신인 시절 겪은 사극에 대한 두려움, 원톱으로서 극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과 부담감 때문이었다. 임지연은 영화 ‘간신’(2015), SBS 드라마 ‘대박’(2016)으로 사극을 경험한 바 있다.

배우 임지연의 장편 데뷔작은 2014년 영화 '인간중독'이다. 이후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2022~2023)에서 학교 폭력 가해자 박연진 역할로 주목받았다, 사진 아티스트컴퍼니

배우 임지연의 장편 데뷔작은 2014년 영화 '인간중독'이다. 이후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2022~2023)에서 학교 폭력 가해자 박연진 역할로 주목받았다, 사진 아티스트컴퍼니

 
임지연은 “사극이 고된 것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탄로나는 장르다. 한복이나 쪽머리가 어색하면 극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외형까지도 섬세하게 신경을 써야 했다”고 말했다. 대사가 어려운 외지부 연기까지 해야 했기에 처음엔 자격지심에 ‘못할거야’라는 생각도 했단다. 그러다 그런 마음이 창피해졌다. “‘사람들이 기대해주지 않아도 내가 끌리면 도전해왔는데, 왜 갑자기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하지?’하는 생각에 뛰어들기로 마음 먹었어요. 첫 대본 리딩에서는 ‘저 한 번 믿어달라’고 인사했죠. 그만큼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여름 내내 16부작 사극을 찍는 건 쉽지 않았다. “1화에서 처절한 노비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살을 빼려고 했는데, 촬영하면서 4~5kg가 저절로 빠졌다”고 말할 정도로 체력적 한계를 느꼈다. 

그럴 때마다 힘이 되어 준 건, 배우 김재화였다. 김재화는 극중 구덕이의 비밀을 알면서도 감싸주는 옥씨 가문 식솔인 막심을 연기했다. 임지연은 “재화 선배님은 내겐 정말 엄마 같은 존재다. 연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지켜주고 의지했다. 입에 붓을 물고 잠자리 방법을 알려주는 그 장면은 정말 웃겼다. 쇠똥(이재원), 도끼(오대환), 끝동(홍진기) 등 식솔들 나올 때마다 웃음 참느라 바빴다. 이 분들 덕분에 힘든 촬영을 버틸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임지연은 "극중 태영이가 막심에게 의지한 것처럼, 나 또한 김재화 선배에게 의지했다"고 말했다.사진 JTBC

임지연은 "극중 태영이가 막심에게 의지한 것처럼, 나 또한 김재화 선배에게 의지했다"고 말했다.사진 JTBC

 

“한예종 후배 추영우에 도움 받아”

상대역의 추영우는 ‘임지연의 남자’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인기 몰이 중이다. 그는 천승휘·성윤겸 1인 2역을 연기하며 임지연과 애틋함, 원망, 고마움, 미안함 등 다양한 감정을 나눴다. 임지연은 추영우와 수시로 대본리딩을 하며 합을 맞췄다. 임지연이 선배 입장에서 드라마를 끌어가는 것은 처음이라서, 준비를 많이 했다고 한다.

임지연은 “추영우가 주목받는 것에 상당한 지분이 있다”고 농담한 후 “내가 아니라도 잘 될 것 같았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물을 만들어가는 장점이 있다. 감각적으로 헤쳐나가는 것이 멋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예술종합학교 후배라고 하는데, 연기하면서 나이가 어리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이 경험 덕분에 앞으로는 동생들과 연기할 자신감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옥씨부인전'에서 예인 천승휘, 성소수자 성윤겸을 연기한 추영우(왼쪽)와 옥태영의 삶을 사는 구덕이를 연기한 임지연. 사진 JTBC

'옥씨부인전'에서 예인 천승휘, 성소수자 성윤겸을 연기한 추영우(왼쪽)와 옥태영의 삶을 사는 구덕이를 연기한 임지연. 사진 JTBC

 
힘들 땐 전작인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합을 맞췄던 송혜교를 찾아갔다. ‘옥씨부인전’ 촬영 전에도 송혜교를 만나 격려를 받았다. “언니가 몇 마디 해주는 것이 정말 힘이 된다.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건 아닌데, ‘너는 할 수 있고 괜찮은 배우야’라는 느낌을 준다”고 했다.

극중 구덕이 응원이 필요할 때마다 외치는 ‘난 대단해! 난 최고야!’라는 대사는 앞으로의 임지연 연기 인생에 있어서 큰 힘이 될 문장으로 남았다. 임지연은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박한 편이라, 대사라도 이렇게 말한다는 자체가 내겐 큰 의미였다. ‘옥씨부인전’은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꺼내볼 드라마”라며 종영을 아쉬워했다.

임지연의 차기작은 이정재와의 로맨틱 코미디 ‘얄미운 사랑’이다. 극중 기자 역을 맡는다. 이에 앞서 tvN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2’를 촬영한다. 그는 “연진이에 이어 구덕이까지 강렬한 서사의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평범한 임지연의 모습을 찾고 싶다. 구덕이를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예능부터 택했다”고 기대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