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트닉 장관 지명자의 발언에는 동맹에도 보조금 같은 ‘당근’보다는 관세를 중심으로 한 ‘채찍’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바이든 정부가 한국ㆍ대만의 반도체 기업에 약속한 보조금 지급을 이행(honor)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 내가 읽지 않은 무엇을 이행할 수 없다”고도 했다.
당초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벌어질 여러 시나리오 가운데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으로 판단했다. 당장 다음 달부터 멕시코ㆍ 캐나다 등에 추가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과는 달리, 관련 행정명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엔 한국ㆍ일본 등 최우방국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산업ㆍ무역 정책을 총괄할 상무장관이 ‘일본의 철강, 한국의 가전’이라 구체적인 품목까지 언급하며 ‘선량한 미국을 이용했다’는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압박을 시작한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벌써부터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LG전자는 현재 세탁기ㆍ건조기를 생산하는 미국 테네시 공장에서 냉장고ㆍTV 등도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태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지난 23일 4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수립 중”이라며 “고율관세가 부과된 제품은 여러 생산지에서 생산하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유통업체와도 협력해 리스크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만일 관세 인상 수준이 본질적인 공급망 변화를 해야 하면 생산시설 이전 및 기존 캐파(생산능력) 조절 등 적극적인 생산지 변화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지원사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 내 네트워크를 갖춘 주요 기업들은 미국 공장 생산품목을 늘리는 등 대응책을 마련해 놓았을 것”이라며 “협상 테이블에서 정부가 힘을 보태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문제는 트럼프 정부 1기때 100억 달러대까지 줄었던 대미(對美) 무역흑자 폭 500억 달러대까지 늘어난 것”이라며 “대미 수입을 늘려 흑자 폭을 줄이고, 미국이 원하는 조선ㆍ철강 등의 직접투자를 강화하는 식으로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미국 현지에 통상외교 협상을 전담하는 '통상협력대사(가칭)'를 임명하고, 한국이 최대한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외교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