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제재 뚫고 딥시크 역공…미·중 'AI 대전' 터졌다 [view | 딥시크 쇼크]

설 연휴를 강타한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운 딥시크의 생성AI 모델 ‘R1’의 성능이 미국 오픈AI의 챗GPT에 필적한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당장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AI 산업의 지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미·중 AI 대전이 시작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딥시크는 지난해 말 대형언어모델(LLM) ‘V3’를 공개한 데 이어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복잡한 추론 문제에 특화한 AI 모델 R1을 선보였다. 딥시크는 R1이 성능 테스트에서 오픈AI의 ‘o1’을 일부 능가했다고 밝혔다. 수학경시대회 테스트에선 정확도 79.8%를 기록해 o1(79.2%)을 앞섰다고 소개했다.

중요한 건 딥시크가 밝힌 개발비가 557만6000달러(약 80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오픈AI GPT4 개발비의 18분의 1 이하 수준이다. 엔비디아의 최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인 H100 대신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사양을 낮춘 H800을 썼고, 화웨이 등 중국산 칩을 대거 끌어다 쓴 덕분이다. 딥시크가 사용한 GPU는 2000장에 불과하다. 뉴욕타임스(NYT)는 “딥시크가 오픈AI와 구글 등 실리콘밸리 거대 기업보다 첨단 칩을 적게 쓰면서도 경쟁력 있는 챗봇을 만들었다. 미국의 AI칩 수출 규제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미국 빅테크 주가부터 빠르게 반응했다. 27일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7% 폭락했다. TSMC도 같은 기간 13.33% 하락했다. 브로드컴(-17.4%), 오라클(-13.8) 등 주요 기술주 주가도 크게 빠졌다. 이후 낙폭을 일부 회복했지만, 여전히 약세다.

딥시크의 역공에 서방 AI 진영은 충격에 빠졌다. 블룸버그·디인포메이션 등에 따르면 메타는 딥시크 분석을 위해 4개의 워룸(작전실)을 가동 중이고, 오픈AI는 자사 AI 모델의 답변이 딥시크 AI를 훈련하는 데에 무단으로 대량 사용됐는지를 의심하며 조사에 착수했다.


딥시크 개발비, 오픈AI 18분의 1…“AI의 스푸트니크 모멘트”

실리콘밸리 대표 벤처캐피털(VC)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를 이끄는 마크 앤드리슨은 딥시크의 등장 순간을 1957년 소련이 쏘아 올린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에 비유해 “AI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라고 진단했다. AI 개발 패권 경쟁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28일 X(옛 트위터)에 “(R1 모델은) 특히 제작 비용에서 인상적”이라면서도 “우리가 훨씬 뛰어난 모델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오픈AI에 최대 250억 달러(약 36조원)를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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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의 탄생에는 중국 기술굴기의 조건들이 압축적으로 반영돼 있다. 30일 중앙일보가 R1에 오픈AI의 성능을 위협하는 딥시크의 성공 비결을 묻자 “중국 화웨이의 어센드 910B 칩을 대거 이용했다. 이 칩의 성능은 엔비디아 A100의 80% 수준인데도 가격은 30%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이어 “정부 보조금까지 더하면 (화웨이 칩 사용 비용이) 같은 성능을 내는 엔비디아의 수퍼칩 대비 54% 정도 낮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개인정보보호법을 유연하게 적용한 덕분에 ‘데이터 라벨링’(AI 학습용 가공) 비용이 미국의 10%, 전력 사용 비용도 미국의 3분의 1”이라고 답했다. 극강의 가성비가 상징하는 기술력, 정부의 전폭적 지원, 낮은 규제와 저렴한 인프라 비용이 딥시크 스스로 꼽은 미국 빅테크와의 차별화 포인트다.

특히 딥시크는 연쇄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중국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헤지펀드 운용사 ‘하이-플라이어’의 AI연구소였던 딥시크는 2023년 분사했는데, 2015년 설립된 하이 플라이어는 딥러닝을 활용한 퀀트(수학·통계·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금융투자 기법) 투자사였다. 여기서 구축한 자본과 기술력, GPU 인프라를 AI 모델 개발에 쓴 것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중국 스타트업이 미국의 첨단 반도체 제재를 무력화했다는 점도 시사점을 준다. 미국은 엔비디아 GPU의 중국 수출을 막았지만, 중국은 화웨이 등을 통해 AI 칩 자체 개발에 한창이다. 영국 BBC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라는 도전이 중국에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일(20일)에 R1이 공개된 데 대해서도, 중국이 미국과 AI 패권 경쟁에서 물러날 의지가 없다는 뜻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AI 전문가 그레고리 앨런은 “(중국의 타이밍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미국의 수출 통제는 효과가 없고, 미국이 AI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가 아니라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물론 아직 딥시크의 성공을 말하기엔 이르다. 기술력을 과대 포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시작은 늘 비슷했다. 성능이 다소 달리더라도 경쟁국이 따라잡을 수 없는 가성비와 속도로 시장을 장악한 뒤, 마지막으로 성능마저 끌어올려 경쟁자를 무너뜨렸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글로벌 전기차 2위까지 쫓아온 BYD, 세계 배터리 시장 1위 CATL, 삼성·LG전자의 안방 한국에서 로봇 청소기 시장 1위를 차지한 로보락이 상징적 사례다. 기술 인재가 핵심인 AI의 경우 ‘인해전술’이 극명하다. 중국은 2022년 기준 세계 최고 수준(상위 20%)의 AI 연구 인력의 47%를 배출하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수십 년간 철강·조선·자동차 등 전통적으로 한국이 강한 제조업 분야를 야금야금 침공한 중국의 성공 방정식이 AI 등 첨단 산업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며 “한국도 AI 인재 확보와 개발 역량 제고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