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성상납' 후지TV 희대의 파문…8년전 '미투' 닮았다, 왜

일본 방송 후지TV의 여성 아나운서 성상납 의혹 스캔들이 확산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12월 복수의 주간지 보도로 시작됐다. 주간지 슈칸분슌은 2023년 6월 전 SMAP 리더 나카이 마사히로(中居正広·52) 자택에서 후지TV 직원 A씨의 주선으로 여성(당시 후지TV  아나운서)와의 식사자리가 있었고, 그곳에서 여성이 나카이와 원치 않는 관계를 맺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7일 후지TV 본사에서 열린 2차 기자회견.참석자는 437명에 달해 이례적으로 10시간 넘게 진행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7일 후지TV 본사에서 열린 2차 기자회견.참석자는 437명에 달해 이례적으로 10시간 넘게 진행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여성은 회사에 피해 사실을 보고했는데 후지TV는 나카이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지도 않고 프로그램에 출연시켰다. 곧이어 비슷한 형태로 나카이와 A씨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다른 증언도 나왔다.

후지TV는 지난달 17일과 27일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자사 직원의 개입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슈칸분슌은 지난달 28일 “추가 취재 결과, 여성은 나카이에게 초대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정정보도했다. 그러면서 “사건 직전 A씨가 여성을 나카이의 자택에서 열린 바비큐파티에 데려갔다. 피해 여성은 (사건이 일어난) 식사 자리가 ‘A씨가 주도한 자리의 연장선이었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여성 측은 여전히 피해사실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카이는 지난달 23일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 후지TV의 가노 슈지(嘉納修治) 회장과 미나토 고이치(港浩一)사장도 지난달 27일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며, 외부 변호사로 구성된 제3자위원회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2일 후지TV 방송 화면. 기업 광고가 끊기면서 공익광고로 대체됐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지난 2일 후지TV 방송 화면. 기업 광고가 끊기면서 공익광고로 대체됐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이번 사태로 지금까지 약 80개 광고주가 후지TV 광고를 중단했고, 이런 기업은 더 늘어날 조짐이다. 후지TV의 3월까지 연 광고수익은 예상액보다 233억엔(약 2190억원) 줄어 2008년에 지주회사 형태가 된 이래 첫 적자를 기록하게 될 전망이다.  

현재 후지TV의 광고방영은 자사 프로그램 홍보와 공익재단 AC 재팬 광고로 대체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정부 공익광고 4건의 방영을 취소했다. 특히 후지TV의 대표 드라마인 '게츠쿠'(월요일 오후 9시 방영)의 경우 1월에 시작된 신작 드라마는 요코하마시 소방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소방국의 요청으로 ‘협력: 요코하마시 소방국’이라는 크레딧을 삭제하기로 했다.

지난달 31일 도쿄 시부야역 전광판에 상영중인 후지 TV 드라마 광고. 이 드라마의 배경인 요코하마시 소방국은 협력 자막을 빼기로 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지난달 31일 도쿄 시부야역 전광판에 상영중인 후지 TV 드라마 광고. 이 드라마의 배경인 요코하마시 소방국은 협력 자막을 빼기로 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속속 드러나는 후지TV의 은폐·축소

후지TV 내에서 경영진의 은폐의혹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주간지 보도 후 한 달이나 지난 시점에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첫 기자회견 같은 경우 참석 매체도 일부 신문 및 방송사로 제한했고 TV 카메라 촬영도 금지됐다. 후지TV 관계자 B씨는 “TV 방송은 영상이 없으면 주요 뉴스로 제작할 수가 없는데, 이 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후지TV는 또 사건을 인지한 후에도 1년 넘게 나카이를 프로그램에 출연시켰는데, 미나토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조용히 업무에 복귀하고 싶다’는 여성의 뜻을 최대한 존중한 조치였다”며 2차가해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사내 위기관리 부서와도 이런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판매된 슈칸분슌. 맨 마지막 페이지에 '편집장에서'라는 제목으로 정정기사를 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지난달 30일 판매된 슈칸분슌. 맨 마지막 페이지에 '편집장에서'라는 제목으로 정정기사를 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이번 사태에 대해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도쿠라 마사카즈(十倉雅和) 회장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후지TV 내부에서도 ‘기업 문화와 풍토를 바꿔야 한다’, ‘거버넌스 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들었다”며 “제3자위원회의 결론을 기다릴 필요 없이, 자체 분석을 통해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후지TV의 조속한 개혁을 촉구했다. 도쿠라 회장은 또 “최근 인권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인권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광고주들이 후지TV 광고를 중단한 것도 이러한 인식 변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아나테이너 시대 연 후지TV

후지TV는 1990년대, 20대 ‘여성 아나(女子アナ)’ 를 연예인처럼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시키는 아나테이너 시대를 열었다.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미나토 사장은 자신의 생일 파티에 여성 아나운서들이 참석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여성을 접대 요원으로 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세간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전 SMAP 리더 나카이 마사히로. 지지통신=연합뉴스

전 SMAP 리더 나카이 마사히로. 지지통신=연합뉴스

가장 큰 문제는 후지TV의 조직적인 은폐·축소 시도와 일본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여성 인권 경시풍조다. 현재 일본에선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시민단체가 없다. 여성의 지인들이 개인적으로 나서서 주간지에 피해내용을 제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SNS에선 여성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 글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두 번째 기자회견 직후 X(옛 트위터)에서는 “후지TV 불쌍하다”는 글이 실시간 트렌드 1위를 차지했다. 슈칸분슌과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오카와 지히로(大川千寿) 가나가와대 교수는 아사히 신문에 “나카이를 프로그램에서 즉각 하차시키지 않은 것은 마치 그의 책임이 없는 것으로 비쳐져 피해여성을 압박했을 것”이라며 여성에 대한 2차 가해를 우려했다.

일본은 2017년 전세계를 강타한 ‘미투’운동도 크게 확산하지 않았던 나라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사회의 ‘여성 상품화’라는 악습이 개선되기는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