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K-민주주의 의심한다…'만족도 49점' 전연령서 최하

 2030세대, 민주주의를 의심하다

‘민주주의 세대의 출현’.


2018년 1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낸 보고서 제목의 일부다. 2016년 이후 촛불집회 등을 거치며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20·30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중 ‘유이’하게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답변한 걸 근거로 들었다. 필자는 “민주화 이후 세대인 20대와 30대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선택이 경제발전에 대한 선택을 능가함으로써 민주주의 필수재 시대를 열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촛불집회의 집단 경험을 중요한 근거로 들었다. 그로부터 7년 후, 상황은 반전됐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20·30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의심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20·30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든 것”이라고 말한다.

두 개의 한국. 서울 광화문 인근 탄핵촉구 집회 참석자들(사진)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탄핵반대 집회 참석자들(아래 사진)이 각각 ‘즉각 파면’과 ‘탄핵 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개의 한국. 서울 광화문 인근 탄핵촉구 집회 참석자들(사진)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탄핵반대 집회 참석자들(아래 사진)이 각각 ‘즉각 파면’과 ‘탄핵 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17년 조사에선 전 세대에 걸쳐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났다. 30대 남성(73.4%)과 50대 여성(79.2%)을 제외하곤 모두 80% 이상이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낫다’고 응답했다. 여기까지는 2018년 기념사업회의 보고서와도 맥을 같이 하는 셈이다.

두 개의 한국. 서울 광화문 인근 탄핵촉구 집회 참석자들(위 사진)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탄핵반대 집회 참석자들(사진)이 각각 ‘즉각 파면’과 ‘탄핵 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개의 한국. 서울 광화문 인근 탄핵촉구 집회 참석자들(위 사진)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탄핵반대 집회 참석자들(사진)이 각각 ‘즉각 파면’과 ‘탄핵 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1월 22~23일 실시한 조사에선 세대별로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이 뚜렷하게 갈라졌다. 8년 전 조사에서 20대 남성의 84.3%가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낫다’고 했지만, 이번 조사에선 62.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20%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30대도 마찬가지다. 하락폭이 20대만큼 극적이진 않았지만, 64.3%만이 긍정했다. 2030 남성은 70대 남성(68.4%)과 함께 60%대를 기록하며 40·50 남성(78%, 82.6%)과 적잖은 인식 차이를 보여줬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세월호 세대’라고도 일컬어지는 20·30은 ‘정치적 무지’ 세대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실망감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봤다.

실제로 20·30은 한국 민주주의의 주요 기관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드러냈다. 이르면 다음달 윤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결정하게 될 헌법재판소에 대해 20대는 38.7%, 30대는 41.4%만이 신뢰한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이 긍정한 40대(52.3%)와 50대(56.7%)와 인식 차이를 보였다. 20·30의 헌재 신뢰도 양상은 오히려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60·70세대(41.9%·34.8%)에 더 가까웠다. 또 헌재에 대해서 ‘불신한다’는 답변도 20대(30.3%)와 30대(29.9%)는 30%에 달해 상대적으로 낮은 50대(23.3%)와 달랐다.

‘정치는 선악 대결’인식, 2030 평균 밑돌아


그래픽=이현민 기자

그래픽=이현민 기자

이는 13일 발표된 일반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전화면접조사인 전국지표조사(NBS)의 결과와 유사했다. 20대(신뢰 45%, 불신 46%)는 60대(47%, 49%)·70대 이상(42%, 51%)와 함께 헌재를 불신한다고 답한 비율이 높은 세대였다. 40대와 50대가 신뢰하는 쪽으로 40%포인트, 34%포인트 더 쏠려있는 것과 큰 차이다.

최근 보수층 일각과 탄핵 반대층이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중앙선관위에 대해서도 20·30들은 못 미더워했다. 20대는 41.5%, 30대는 37%의 응답자가 중앙선관위를 ‘불신한다’고 응답해 ‘신뢰한다’(23.2%, 30.1%)를 넘어섰다. 이는 선거공정성에 대한 의심으로도 이어졌다. 2017년 대선 당시엔 90%가 넘는 20·30 남성이 ‘공정했다’(90.8%, 91.1%)고 응답했으나 2024년 총선에 대해선 각각 65%와 64.3%만 그렇다고 답했다.

국회와 법원의 처지도 다르지 않았다. 국회를 ‘신뢰한다’고 답한 20·30 응답자는 각각 18.7%와 14.4%로 40·50(19.0%·25.9%)보다 낮았다. 법원도 20·30세대의 29.6%와 30.4%만이 ‘신뢰한다’고 답했다. 이렇다보니 ‘법원의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수용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그래야 한다는 답변은 48.1%였는데, 20·30은 그보다 낮은 42.1%, 44.1%였다.

2030세대가 더 민주적인 인식이나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 결과도 있다. 진영 정치를 낳는 인식으로 꼽히는 ‘정치는 결국 선과 악의 대결’과 관련, 20·30은 각각 34.4%, 33.2%가 그렇다고 답해, 평균(40.9%)을 하회했다. 대의제와 관련된 ‘사회는 일반 대중보다 소수의 지도자가 다스릴 때 잘 되는 법’이란 질문에도 20대의 동의율이 높다(36.9%). ‘국가를 위해 개인은 희생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장 부정적인 게 20·30이었다. 각각 69.6%, 61.5%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70대 이상에선 35.8%만 그렇게 말했다. ‘다수가 찬성하는 의견에 소수의 사람이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대해서도 20·30은 압도적으로 반대했다(78.2%, 77.8%). ‘정부가 입법부에 의해 지속적으로 견제된다면, 위대한 일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20·30은 38.3%, 38.5%만 동의했다(평균 46.5%).

2030의 스탠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보수화가 전세계적 현상인 것은 맞지만, 한국의 경우엔 민주당 정부에 대한 불만과 이탈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20대 남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 분노로”
실제 최명덕(27·대학생)씨가 그런 경우다. 고등학생 때 세월호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경험한 그는 “촛불시위에 두 번 나갔고, 2017년에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윤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에는 나가지 않지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론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최씨는 “내가 보수정당을 지지할 줄은 몰랐는데, 조국 사태로 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그래픽=이현민 기자

실제 2017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에 대한 선호도는 20대 남성(2.59)과 20대 여성(2.23)이 전 세대에서 가장 낮았다. 반면 2025년 국민의힘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는 20대 남성(3.26)이 30대 남성(2.57), 40대 남성(1.99), 50대 남성(2.46)보다 높아졌다. 같은 기간 20·30 세대 남성의 민주당 선호도는 6점대였던 게 3점대로 내려갔다.

그렇다고 2030, 특히 남성의 흐름이 보수 정당 지지냐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하상응 서강대 교수는 “2030세대의 ‘보수화’라기 보다는 ‘2030세대의 반동’이라고 본다”며 “이들이 자라온 기간 동안 여당 및 제1정당이 민주당이다 보니 이들에 대한 반발이 보수화로 비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강윤 평론가도 “양측이 시국 인식이나 정당 선호도 등에서 비슷한 흐름을 보여주지만 배경은 다르다”며 “60대 이상은 자신들이 믿는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로부터 체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20대는 자신들의 주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불만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단순히 보면 현재 우리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는 집단은 민주주의 작동방식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 이들이며, 대체로 젊은 남성 유권자들”이라며 “다만, 이들도 계엄과 탄핵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파국적 상황은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족이 민주주의의 제도적인 틀 내에서 관리되도록 정치인들이 더 큰 합의와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20·30세대 안에서 남녀 간 차이는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미투’ 운동과 문재인 정부의 페미니즘 정책 추진 속에서 남성들은 군 입대 등으로 ‘역차별’을 당한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사회적 ‘분노’로 발전했다”며 “여성들이 진보 정치 세력을 지지하니까, 이에 대한 반발로 보수 세력으로 눈을 돌리게 한 측면이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면서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