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에 마련된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방문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8675㎡(약 2630평)에 달하는 양재동의 한 도로 사용권을 놓고 하림그룹과 소송전을 펼치다 대법원에서 결국 패소했다. 시는 그간의 도로 사용료와 이자를 합친 404억원을 하림 측에 지불했다. 그에 더해 앞으로 매년 100억원에 달하는 도로 사용료까지 부담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23일 하림지주 자회사인 하림산업이 KB부동산신탁과 함께 서울시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에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2021년부터 4년여에 걸친 소송전에서 서울시가 결국 진 것이다.
대상이 된 땅은 과거 화물터미널 부지로, 규모는 9만6017㎡에 달한다. 서초구 양재 나들목(IC) 인근에 있어 노른자위로 꼽힌다. 사연은 깊다. 2006년 시행사인 파이시티가 이 땅을 매입, 유통업무시설(용적률 400%)로 개발하려다 2014년 파산했다. 당시 정관계 로비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결국 하림그룹이 2016년 공매로 땅을 매입했다. 유찰을 거듭하던 땅의 인수가격은 당시 최저입찰가격(9864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524억원이었다.
양재동 도시첨단물류단지 조성 개요. [사진 하림산업]
하림그룹이 건립 추진 중인 도시첨단물류단지 조감도. 사진 서울시
하림그룹은 이 땅을 용적률 800%의 도시첨단물류단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지하에는 물류시설, 지상에는 1970가구 규모의 아파트ㆍ오피스텔과 호텔 등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이미 서울시 심의를 통과해 2029년 준공이 목표다. 사업비는 6조8712억원에 달한다. 용적률 상향에 따른 기부채납 비용은 4300억원 상당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부간선도로 지하화와 연구개발(R&D) 시설 건립 등에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2600평 도로 소송전, 하림 “매월 약 8억 사용료 내라”
문제는 서울시가 기부채납과 별개로 땅의 일부(8675㎡)를 2013년부터 도로(양재대로 12길)로 확장해 쓰고 있단 점이다. 하림 측은 땅을 매입한 뒤 서울시에 “도로용지를 불법 점유하고 있으니 보상해 달라”고 요청했고, 시가 이를 거부해 결국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도로는 과거 파이시티가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기로 한 용지에 지어졌다. 당시 서울시는 서울추모공원 이용객 증가와 주변 개발사업으로 교통량이 늘 것을 고려해 폭 15m였던 도로를 44m로 넓혔다. 하지만 파이시티는 첫 삽을 뜨기 전에 파산했고, 도로만 준공됐다. 기부채납으로 인한 서울시로의 소유권 이전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도로 소유권은 하림이 갖고 있다.
소송에서 서울시는 도로가 이전 소유자의 토지사용 승낙을 받고 만들어진 데다가, 하림 측 역시 땅의 제약을 알고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전체 부지 매입가도 저렴했다는 것이다. 또 하림이 만들 도시첨단물류단지 역시 이 도로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 측은 “원래 추모공원 진입로를 위해서는 도로 폭을 35m로만 확장하면 되는데,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 44m로 확장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림 측은 “과거 사업 계획이 실행되지 않은 만큼 관련 기부채납도 무효”라는 입장이다. 결국 서울시는 1심에서 패소했다가 2심에서 이겼지만, 대법에서 다시 졌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지금까지의 도로 사용료와 이자 등 404억원을 이미 하림에 지급했다.
시는 앞으로도 도로 사용료를 내야 한다. 2심에서 하림 측이 주장한 도로 사용료는 월 7억8000만원에 달한다. 정비사업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기부채납은 사업계획에 기생하는 조치인데, 사업이 엎어졌는데 기부채납만 살아남은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로 사용료 규모 등을 놓고 파기환송심에서 적극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