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을 '패싱'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나서자 유럽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평화 협상에서 당사자가 배제돼선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참여를 촉구했다. 

유럽 주요국 정상들은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덴마크·폴란드 정상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회의에선 "우크라이나에 강요된 평화는 거부한다"(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우크라이나 없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결정을 할 순 없다"(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 등의 발언이 나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곧 만나 종전 협상 논의를 하겠다고 밝히면서 유럽 정상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회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급히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회의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 약 20분간 통화하며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마크롱 대통령과 통화한 후 X(옛 트위터)를 통해 "마크롱 대통령과 긴 대화를 나눴다"며 "우리는 안보 보장이란 공통의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유럽 정상들 사이에선 국방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폴란드·영국 등은 유럽을 둘러싼 새로운 안보 환경을 인식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미국이 안전장치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러시아를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안에는 의견이 갈렸다. 앞서 스타머 총리는 지난 16일 우크라이나에 영국군을 파병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숄츠 총리는"(전쟁 중에 파병 논의를 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의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는 한발 빼는 모양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를 방문한 뒤 "우크라이나에 평화협정을 강요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모든 것이 아직 논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종전 협상에서 유럽의 참여에 대해선 "모든 사람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은 합리적이거나 실행 가능하지 않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켈로그 특사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와 북한·이란·중국과의 관계도 거론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러시아 측에 파병 북한군의 완전한 철수나 북러 간 무기 거래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켈로그 특사는 18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만난 후 20일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날 예정이다. 

오는 18일 미국과 러시아 간 장관급 회담이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선 두 가지 전쟁에 대한 논의가 동시에 이뤄졌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회담에 앞서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났다.

미 국무부는 "루비오 장관은 지역 안보에 기여하는 가자지구 관련 해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가자지구 인수 및 개발 구상에 대해 설명하고 협력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중동 평화 구상이 성공하려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짚었다.  

양측은 러시아와의 회담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유리 우샤코프 외교담당보좌관 등 러시아 대표단도 이날 리야드에 도착했다. 미국 측에선 루비오 장관과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CNN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트럼프 대통령과 오랫동안 가까운 관계였고, 푸틴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다고 전했다. 앞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에미리트(UAE)와 함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포로 교환을 중재한 적이 있고, 최근 러시아에서 미국인 교사 마크 포겔을 석방하는 과정에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