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뉴스1
선관위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국회에서 통제 방안 마련 논의가 진행된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라며 “일부 고위직 자녀 경력 채용 문제와 복무기강 해이 등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감사원이 선관위 채용 비리 의혹과 복무기강을 점검한 감사 보고서를 공개한 뒤 닷새 만에 외부 감시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처음 밝힌 것이다.
선관위는 2023년 5월 감사원이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한 직무감찰에 착수하자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며 반발했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의 “선거 사무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선관위 바람대로 헌재는 지난달 27일 “감사원은 직무감찰 권한이 없다”며 선관위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같은 날 감사 결과가 공개되며 곧장 “선관위 성역화”, “감시 사각지대 놓인 선관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19개월에 걸친 감사 끝에 전직 사무총장과 사무차장 등 선관위 고위직의 자녀 채용 비리 정황이 무더기로 공개된 게 결정타였다. 공교롭게 같은 날 헌재 결정이 공개된 게 외려 후폭풍을 부른 것이다.
그동안 선관위에 날을 세우던 국민의힘은 “국민이 감사해야 한다”(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선관위는 마피아 패밀리”(권성동 원내대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선관위 보도자료가 나오기 직전인 4일 오전엔 특별감사관 도입 등 외부 통제를 강화하는 선관위 5개 개혁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배포된 선관위 보도자료에 담긴 대책은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란 비판이 나온다. 선관위가 “조직 내부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35년 만에 외부출신인 김용빈 전 사법연수원장을 (2023년 7월)신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거나 “감사기구 독립성 강화를 위해 지난해 1월 감사관을 외부에서 임용하고 다수 외부위원으로 구성한 독립된 감사위원회를 설치했다”고 했지만 이미 진행된 일을 재차 알린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직 경력 채용은 현재 실시하지 않고 있고 ▶면접위원을 100% 외부위원으로 위촉했고 ▶다수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력 채용 제도(비다수인 경채)도 폐지했다는 것도 이미 시행되고 있는 내용이다.
선관위는 또 “징계 절차가 중단됐던 직원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엄중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이 또한 당연한 후속 조치다. 그나마 감사원이 징계를 의뢰한 32명 중 퇴직자를 제외하면 17명 만이 징계 대상이다.
율사 출신의 국민의힘 의원은 “선관위에 자정 기능을 맡길 수 없다는 게 이번 감사로 드러났다”며 “감사위원회 강화도 결국 선관위 울타리 내부의 조치일 뿐이다”고 지적했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행정부의 견제는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입법부의 통제를 받겠다는 것은 ‘감사 취사선택’”이라며 “선관위는 선거 관리를 명목으로 국회의원을 감시·감독해왔는데, 자칫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자정 능력을 상실한 기관에는 제3자의 외과적 수술이 정말 필요하다”며 “국회가 특별감사관법을 제정해서 한시적 기간 내에 모든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개선 방안을 찾는 게 선관위와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사전투표 폐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장동혁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사전투표를 폐지하는 대신 본투표일을 현행 1일에서 3일로 늘리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