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행동 주도권, 기관→소액주주로…중기 창업자 해임에, 대기업에 주주제안

지난해 3월 28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이마트 제13기 정기 주주총회가 열렸다. 사진 이마트

지난해 3월 28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이마트 제13기 정기 주주총회가 열렸다. 사진 이마트

이마트는 이달 말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소액주주들이 제안한 안건을 상정할지 막판 검토 중이다. 지난달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가 정관상 집중투표 배제 조항 삭제, 주총 보수 심의제 도입, 권고적 주주제안권 도입 등을 주주제안한 데 따른 것이다. 윤태준 액트 소장은 “주주제안 요건인 ‘6개월 이상 보유 지분 0.5%’를 플랫폼에서 모아 이마트에 증빙 서류를 모두 제출했다”라며 “앞으로 소액주주들에 의한 주주제안이 매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상장사 주주들이 보유 지분을 활용해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주주행동주의’가 거세지는 가운데, 최근 주주행동의 주류가 기관투자자에서 소액주주로 옮겨가는 움직임을 보인다. 9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사 전체 주주제안 주체 중 소액주주의 비중이 50.7%로 나타났다. 2015년 27.1%에서 10년 새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과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 영향으로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2000년대 초 해외 사모펀드가 주도한 국내 주주행동주의는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도입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를 거쳐 최근 소액주주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 과거엔 소액주주연대가 의결권 위임장을 받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으나, 이제 모바일 앱으로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액트·헤이홀더와 같은 플랫폼이 소액주주들을 결집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코스닥 상장사인 중소 바이오 기업 아미코젠의 임시주총에서는 소액주주가 결집해 창업주 신용철 회장을 사내이사에서 해임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소액주주들은 신 회장 보유 지분(12.6%)의 두 배가 넘는 약 30%를 액트를 통해 모았다.

대기업 중에는 유통기업들이 우선 타깃이 되고 있다. B2C(기업·소비자간 거래) 기업으로 소비자의 관심이 크고, 주가순자산비율(PBR)도 낮아서다. 롯데쇼핑은 지난달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담은 주주제안을 받았으나 지분 요건 미달로 이번 정기주총 안건 상정은 무산됐다. 농심은 지난 1월 익명의 소액주주로부터 연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표해 달라는 주주서한을 받았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대한상의가 상장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20곳(40%)은 최근 1년간 ‘주주 관여’(주주제안·서한·면담)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주주 관여 주체를 ‘소액주주 및 소액주주연대’라고 답한 기업은 90.9%(복수응답)에 달했다. 이어 ‘연기금’(29.2%), ‘사모펀드 및 행동주의펀드’(19.2%) 순이었다. 주주 관여 내용 중 배당 확대(61.7%·복수응답) 요구가 가장 많았다. 이어 자사주 매입·소각(47.5%), 임원의 선·해임(19.2%), 집중투표제 도입 등 정관 변경(14.2%) 등이었다.

재계는 소액주주들의 요구사항이 단기 이익에 치우친 경향이 있어, 투자와 연구개발(R&D)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업이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에만 중점을 두면 중장기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야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상장사의 83.3%는 ‘상법 개정 시 주주 관여 활동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통기업 A사 관계자는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인수합병(M&A)과 시설투자 등 구조개편을 추진했으나, 소액주주들은 높은 부채비율을 이유로 주주서한을 보내고 있다”라며 “상법 개정 시 소액주주 중심의 주주행동주의가 확산해 사업을 구조개편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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