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백수 아파트'의 주인공 거울(경수진, 가운데)은 아파트 층간 소음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이웃 주민들과 힘을 합친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화차’ ‘신세계’ ‘대호’ 등의 연출팀에서 일했던 이루다(37)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감독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던 10년 전, 오피스텔에서 쿵쿵 대는 소리가 1년 가까이 계속되자, 영화 주인공 거울처럼 소음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모든 호수를 돌아다니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헤맸어요. 알고 보니 현수막의 나무 프레임이 건물 외벽에 부딪히는 소리였어요.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저를 제외하고 다들 참고 지냈던 거죠. 오지라퍼 한 명만 있었어도 층간 소음이 진즉에 해겼됐을텐데..."
그런 아쉬움이 이번 영화의 거울이란 캐릭터로 형상화됐다. 남동생 집에서 조카를 돌봐주며 함께 살던 거울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주변에서 불행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신념을 갖고, 동네 안전을 지키는 오지라퍼가 됐다. 동생 집에서 쫓겨나 잠시 머무르게 된 백세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도 '누군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망설일 때 그냥 나서는 사람, 그런 소신과 선의를 가진 사람이 불쏘시개처럼 주변을 감화시켜 소통과 연대를 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거울의 대사처럼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잖아요."
거울은 일부 주민들과 힘을 합쳐 층별 데시벨을 측정하거나, 주민센터 문서를 찾아보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층간 소음 원인을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층간 소음이 특정 입주민의 잘못이 아닌, 재건축이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 '백수 아파트'를 연출한 이루다 감독. ″소신과 선의를 가진 오지라퍼 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감화돼가는 소통과 연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후반부에는 거울을 오지라퍼로 만든 계기가 밝혀진다. 자신의 잘못으로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됐다는 자책감은 거울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 또한 열악한 육아 환경, 등하교 안전 등 사회적 문제와 관련 있다.
"실제 일어났던 그 일은 사소한 부주의에서 비롯된 끔찍한 사건이에요. 주제 의식과 맞아 떨어져서 그 부분을 더 파고들었습니다. 하지만 신파적으로 표현하고 싶진 않았어요. 경수진 배우가 눈물을 최대한 참고 담백한 연기를 해줬습니다."
이 감독은 거울이 빚더미에 앉은 전직 회계사 경석(고규필)의 자살 시도를 막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거울은 "어찌 됐든 살아야 한다"는 말로 주저하는 경석을 설득한다. 거울 자신에 대한 다짐이기도 한 그 말은 사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를 향한 호소다.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을까요? 거울 덕분에 경석의 삶은 바뀌었고, 그는 층간 소음 수사는 물론, 아파트 커뮤니티를 위한 능동적인 일을 하게 되죠. 거울에게 있어 층간 소음 해결 못지 않게 의미 있는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백수 아파트'는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 아카데미 수상작 등 대작들 사이에서 힘겹게 관객을 만나고 있다. 9일 현재 관객 수는 3만 7000명이다. 하지만 이 감독은 부족한 예산과 시간 내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오지랖'의 개념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관람 평을 봤을 때 보람을 느꼈어요. 앞으로도 일상 속에 휴머니즘과 유머가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거울이처럼 멋진 캐릭터를 앞세워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