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달러 받고 뒤통수...트럼프 “대만이 반도체 가져가, 韓도 약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플로리다 마러라고 사저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 헬기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는 도중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플로리다 마러라고 사저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 헬기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는 도중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리는 점차 반도체 사업을 잃었고 이제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대만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나눈 대화에서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해외에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특히 “거의 독점적으로 대만에 있다. 약간은 한국에 있지만 대부분 대만에 있다”며 한국과 대만을 동시에 겨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7월 언론 인터뷰 등을 포함해 그간 몇 차례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전부 가져갔다. 미국에 방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정조준한 바 있는데, 한국을 함께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대만과 같은 논리로 한국에 대미 투자 등을 압박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대만 TSMC 대미 투자 발표 나흘 만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한테서 (반도체 사업을) 훔쳐간 것이지만 저는 그들을 비난하지는 않는다”며 “그 자리에 앉아 있던 (과거 행정부) 사람들을 비난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과 관련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 만지는 모든 것에 반도체가 있다”고 한 뒤 “그들(해외 반도체 업체)은 우리 나라에 수천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고 우리는 반도체 산업의 큰 부분을 되찾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 3일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는 1000억 달러(약 145조 원)의 대미 투자 계획을 공개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때만 해도 “이것은 미국과 TSMC에 엄청난 일”이라며 치켜세웠는데, 나흘 만에 다시 ‘대만 때리기’에 나선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 웨이저자 회장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TSMC의 1000억 달러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 웨이저자 회장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TSMC의 1000억 달러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대만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은 철저히 미국에 이익이 되느냐 여부에 따라 큰 폭으로 달라지는 흐름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첫 내각 회의에서 중국의 대만 무력 침공 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노코멘트”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좋은 관계”라고만 했다. 그러다 닷새 만인 지난 3일 TSMC의 1000억 달러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중국의 대만 공격 가능성과 관련된 질문에 “재앙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다시 나흘 만에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산업을 훔쳐갔다”는 논리로 ‘저격’한 것이다.

“반도체법, 수천억 달러 돈 낭비”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대미 반도체 투자를 하는 기업에 일정 비율의 보조금을 주는 내용의 반도체법 폐기 추진 의지를 거듭 밝혔다. “수천억 달러가 드는 돈 낭비”라면서다. 지난 4일 상ㆍ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반도체법을 없애고 그 돈으로 부채를 줄이는 데 써야 한다”고 한 지 사흘 만이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줄 필요 없이 높은 관세를 매기면 대미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이날도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에 10센트도 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관세 때문에, 관세를 내고 싶지 않아서 미국에 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반도체ㆍ자동차 등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를 곧 결정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결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대미 투자냐, 관세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고강도 압박인 셈이다.

“캐나다 목재·낙농제품에 곧 관세”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는 목재와 낙농 제품에서 미국을 갈취해 왔다. (캐나다가 미국산 낙농 제품에 부과하는) 250%의 관세는 우리 농가를 죽이는 일”이라며 캐나다산 목재와 낙농제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조만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부터 캐나다ㆍ멕시코산 수입품에 부과하기 시작한 25%의 관세를 미국ㆍ멕시코ㆍ캐나다 무역협정(USMCA)이 적용되는 품목에 한해 4월 2일까지 유예한다는 결정을 지난 6일 발표했었다. 이후 하루 만에 다시 캐나다 공격에 나선 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기싸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두 사람은 최근 관세 문제 등 현안을 논의하는 통화를 하다 욕설이 오가는 등 첨예하게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