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눈으로, 동물 울음소리로 표현한 세계...美 아카데미 수상작 ‘플로우’

'플로우'의 주인공인 '고양이'.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까칠한 고양이들의 습성이 반영됐다. 홍수 때문에 탄 낡은 배에서 카피바라, 골든 리트리버,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 새와 만난 고양이는 서서히 자신의 곁을 내어준다. 사진 판씨네마

'플로우'의 주인공인 '고양이'.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까칠한 고양이들의 습성이 반영됐다. 홍수 때문에 탄 낡은 배에서 카피바라, 골든 리트리버,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 새와 만난 고양이는 서서히 자신의 곁을 내어준다. 사진 판씨네마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생선을 입에 물고, 개들을 피해 달리는 숲속의 ‘고양이’.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아카데미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을 받은 ‘플로우’의 주인공이다.

‘플로우’는 갑작스러운 대홍수를 마주한 고양이가 낡은 배를 타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고양이, 카피바라, 골든 리트리버,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가 배에 모여 물이 들이치는 재난상황을 헤쳐나간다. 건축물 등 인간이 살던 흔적은 등장하나 직접적으로 인간이 나오는 장면은 없다.

대사 없이, 오로지 동물 울음소리만 들리는 이 애니메이션은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작품. 라트비아 국가 역사상 최초로 올해 아카데미·골든글로브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거머쥐며 주목을 모았다. ‘인사이드 아웃 2’(2024, 픽사·월트 디즈니 픽처스), ‘와일드 로봇’(2024,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등 대형 제작사의 쟁쟁한 작품을 제치고 이뤄낸 성과다. 감독은 아카데미에서 “이 수상이 전 세계 독립영화 제작자들에게 문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1인 제작 애니메이션 '어웨이'(2019)로 데뷔했다. '플로우'에서도 기본적인 CG 모델이나 이미지는 직접 작업했다. 사진 판씨네마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1인 제작 애니메이션 '어웨이'(2019)로 데뷔했다. '플로우'에서도 기본적인 CG 모델이나 이미지는 직접 작업했다. 사진 판씨네마

전작인 애니메이션 ‘어웨이’(2019)에서 각본부터 음악까지 전 과정을 홀로 작업한 감독은 ‘플로우’로 첫 팀 작업을 선보였다. 라트비아·프랑스·벨기에 3개국이 ‘플로우’ 제작에 참여했다. 이들이 모여 방대한 동물 영상을 참고하고, 실제 동물의 소리를 녹음해 묘사에 공을 들였다고. 동물들의 모습, 배경이 되는 자연풍경은 실사 영화처럼 실감 난다.

‘플로우’ 속 동물들은 사람처럼 걷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동물이 동물답기’를 원한 감독의 의도가 담겼다. 영화엔 그들의 습성과 울음소리가 반영됐다. 호기심이 많지만 주변을 경계하는 고양이, 해맑고 장난기 많은 골든 리트리버, 평화로운 카피바라, 욕심 많은 여우원숭이, 무리와 함께 다니는 새 뱀잡이수리까지 각기 다른 종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대사는 없지만 동물의 눈빛, 몸짓과 배경음악을 통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감독은 배급사와의 인터뷰에서 “대사에 의존하지 않는 영화를 좋아한다. 대사보다 비주얼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카메라도 동물 시점으로 움직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새 동물의 눈으로 낯선 세계를 탐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 골든 리트리버, 고양이, 카피바라. 낡은 배를 타고 홍수를 헤쳐나가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사진 판씨네마

왼쪽부터 순서대로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 골든 리트리버, 고양이, 카피바라. 낡은 배를 타고 홍수를 헤쳐나가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사진 판씨네마

동물이 나오는 영화지만 귀엽기만 한 건 아니다. 영화는 재난을 겪으며 달라지는 동물의 삶을 비춘다. 홍수가 덮치며, 그들은 평소엔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한다. 주인공 ‘고양이’의 성장 서사가 주축이다. 혼자이고 싶었던 고양이는 다른 동물들을 낡은 배에 태우고, 나중에는 의지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인다. 동물들은 처음엔 어색하게 지내지만 서로를 통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감각하는 세계 또한 다채롭게 표현된다. 의지하던 동료가 떠날 때의 외로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올 때의 공포는 꿈에서나 볼 법한 환상처럼 그려진다. 이러한 묘사는 특히 주인공 ‘고양이’의 마음을 전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플로우’는 어른과 아이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감독은 배급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좋아해 주길 바라며 노력했다. 아이들도 상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랑스러운 동물들의 성장기를 담은 ‘플로우’는 한국에서 오는 19일 개봉한다. 85분. 전체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