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인은 왜 호박씨를 까먹을까?

호박씨. 바이두

호박씨. 바이두

중국에서 전통 찻집이나 주점에 가면 먼저 접시에 호박씨나 해바라기씨 수박씨를 소복이 담아서 가져다준다. 차나 술이 나오기 전 심심풀이로 씨앗을 까먹으라는 뜻이다. 아니더라도 중국 도심 골목길에 들어서면 양지바른 곳에 앉아 호박씨 또는 해바라기씨 까먹으며 절묘하게 껍질을 뱉어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해바라기씨. 바이두

해바라기씨. 바이두

전형적인 중국의 예전 거리 풍경인데 중국 사람들, 왜 이렇게 호박씨나 해바라기씨 등 각종 씨앗을 까먹는 것일까? 언제부터 이런 풍습이 생겼을까? 그리고 이런 씨앗 까먹기에는 어떤 사회적,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

먼저 씨앗 까먹는 풍속의 시작은 중국에서도 자세이는 모른다. 최초의 기록은 10세기 북송 때 문헌인 『태평환우기』에 보이는 것이라는 데 당시 계절별 풍속을 노래하면서 정월에 박씨(瓜子)를 까먹는다는 내용이 보인다. 다만 기록에는 나오지만 이 무렵에는 아직 씨앗 까먹는 풍습이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호박씨를 비롯한 각종 씨앗 까먹기가 널리 유행한 것은 명청 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청나라 때 광범위하게 퍼졌고 이 무렵 각종 문헌에 호박씨, 해바라기씨, 수박씨 까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바이두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바이두

이를테면 18세기 청나라 강희황제 때의 『연야(年夜)』라는 시에는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제야 무렵, 거리에 밤새 씨앗 사라는 외침이 그치지 않았다고 나온다. 또 건륭 때 북경의 세시풍속을 적은 『제경세시기(帝京歲時記)』에도 섣달 그믐날이면 호박씨 수박씨를 깨물어 근심을 날려 보내라며 씨앗 파는 소리가 거리에 넘쳐났다고 기록돼 있다.


이밖에도 소설 『금병매』에는 반금련이 날마다 남편 무대가 대문을 나서자 창가에 기대어 씨앗을 까먹었다는 내용이 보이고 『홍루몽』에도 역시 씨앗 까먹는 장면이 보이니 명청 시대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만은 분명하다.

어쨌든 옛날 중국인들 왜 이렇게 열심히 호박씨 등을 까먹었을까? 다양한 해석이 분분하다. 하나는 음식문화적인 풀이로 중국인들이 견과류에 대해 품었던 환상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견과류를 먹으면 특히 새해 새봄에 견과를 먹으면 건강에 좋으며 오래 살 수 있고 심지어 나쁜 귀신도 쫓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잣을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호두는 장수과(長壽果)라고 불렀는데 호박씨나 해바라기씨, 수박씨를 이런 견과류의 대용품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민속적인 풀이도 있다. 강희나 건륭황제 때 정월 춘절 즈음에 호박씨 등을 까먹었던 이유는 이런 씨앗을 깨물 때 '딱'하며 껍질 깨지는 소리에 나쁜 귀신이 놀라 도망가 액땜을 하고 그래서 일년 내내 근심걱정이 사라지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정월 대보름에 땅콩이나 호두 등의 부럼을 깨며 부스럼 옮기는 역귀를 물리치기를 빌었던 것과 비슷하다.

지리적 환경적 요인 때문에 생긴 풍속이라는 해석도 있다. 호박씨 수박과 해바라기씨 까먹기는 중국 북방에서 비롯된 풍습으로 본다. 북
경을 비롯해 중국 북방은 춥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데다 겨울이 길다. 더군다나 겨울은 농사를 쉴 수밖에 없는 농한기에 해당된다. 그러니 중국식 표현을 빌면 '마오동(猫冬)', 즉 겨울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따뜻한 방 속에 들어앉아 호박씨 등을 까먹으며 잡담을 하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던 것에서 비롯됐다는 풀이도 있다.

중국인의 호박씨 까먹는 풍속, 사실 어느 한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다양한 풀이에 더해 복잡한 요인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명청 시대 이래로 널리 퍼졌을 것이다.

바이두

바이두

어쨌든 중국의 이 독특한 풍속을 놓고 벌이는 중국인들의 사회적 해석도 흥미롭다. 일부 중국인들은 호박씨 까먹기 풍속에 대해 무척이나 긍정적이다. 일단 이런 풍속이 생긴 것은 태평성대였음을 반영한 결과라는 것이다.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고 사회가 험악할 때 한가하게 앉아 호박씨나 까먹으면서 잡담이나 하고 지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세상이 한가하고 태평했으니 생긴 풍속이라는 것인데 청나라 내지 중국의 최고 전성기인 강희, 건륭 황제 때 유행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인 풀이도 있다. 다소 과장됐지만 청나라 말 아편 피우는 습관 다음 가는 악습이라는 것이다. 할 일 없이 호박씨 해바라기씨나 까먹으며 게으르게 허송세월을 보내고 앉아 있으니 중국인의 나쁜 습관이 호박씨 까먹기에 집약돼 있다는 것이다.

주로 중국이 어려웠던 시기인 20세기 초 민국(民國)시기의 논평에 이런 비판이 자주 보인다.

호박씨가 됐건 해바라기씨가 됐건 중국인의 씨앗 까먹기 풍속이 외국인의 눈에는 독특하게 보이는데 그 속에는 이런 논쟁과 문화적 배경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흥미롭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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