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항고포기, 입장 변함 없다"…'날∙시간' 논란엔 "정비 논의"

심우정 검찰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심우정 검찰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대검찰청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에 “항고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13일 재확인했다. 전날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을 향해 “즉시항고를 통해 상급심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발언한 데 대한 대응 격이다.

대검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검찰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이렇게 밝혔다. 대검은 “구속취소 결정에 대한 불복 여부는 검찰의 업무 범위에 속하고, 이에 대해 검찰총장이 수사팀과 대검 부장회의 등 의견을 충분히 듣고 숙고 끝에 준사법적 결정을 내린 이상 어떠한 외부의 영향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7일 법원이 윤 대통령의 구속취소를 결정한 것을 두고는 “오랫동안 형성된 실무례에 반해 부당하다”면서도 “인신구속과 관련된 즉시항고를 위헌으로 판단한 헌재의 종전 결정 취지, 구속기간에 문제가 없더라도 수사과정의 적법성에 대한 의문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법원 판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고 본안에서 바로잡기로 결정한 바 있다”고 부연했다.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 걸린 검찰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 석방 후 법원과 검찰 내부에서는 구속취소 결정과 즉시항고 포기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뉴스1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 걸린 검찰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 석방 후 법원과 검찰 내부에서는 구속취소 결정과 즉시항고 포기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뉴스1

이어 대검은 “구속기간의 산정 방법과 구속취소 관련 즉시항고 제도에 대해서는 해석 논란과 위헌성이 없도록 신속한 정비 방안을 관계기관과 논의하겠다”고도 덧붙였다. 구속기간 산정을 ‘날’이 아닌 ‘시간’ 단위로 계산하라는 법원의 결정으로 혼란이 계속되자 이를 정리하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청구를 지난 7일 인용했다. 검찰의 공소 제기가 구속기간이 만료된 후 이뤄졌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내란죄 수사권에 대해서는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이유였다.


천대엽 법원행정처 처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천대엽 법원행정처 처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전날 천 처장이 검찰을 향해 “상급심의 판단을 받는 게 필요하다. 석방한 이후라도 즉시항고가 가능하다”고 말하자 검찰 내부는 일순간 혼란에 빠졌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법사위 도중 대검 간부들에게 “상황을 지켜보고 각자 생각을 정리해보자”는 말을 남겼고, 한 대검 간부는 “의논이 필요할 것 같다. 천 처장이 검찰에 즉시항고를 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심우정 총장, 대검 간부회의 소집 안 해

이에 이날 오전 심 총장이 대검 부장단을 상대로 간부회의를 열고, 즉시항고 제기 여부를 재논의할 거란 예측이 대검 내부에서 나왔다. 심 총장이 직접 “생각해보자”는 말을 남긴 이상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불시에 회의가 소집될 수 있다는 말도 돌았다. 윤 대통령의 구속기소(1월 26일),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 포기(3월 8일) 등 중대한 사안마다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신중히 결정하는 심 총장의 성향을 고려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회의는 열리지 않았고, 심 총장은 지난 8일 즉시항고를 포기한 기존 결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한 대검 간부는 이를 두고 “법원행정처장의 발언은 당연히 고려할 사항이지만, 외부의 발언 하나로 검찰 조직이 숙고해 내린 결정이 뒤집히는 것도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심 총장은 지난 10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적법 절차와 인권 보장은 취임 이후 계속 강조해 온 검찰의 기본적인 사명이다. 여러 의견을 종합해 적법 절차 원칙에 따라 소신껏 결정을 내렸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뉴스1

 

윤갑근 “상급심 가이드라인 제시한 것”

검찰 내부에선 전날 천 처장의 발언 취지가 지난 7일 지귀연 부장판사의 결정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어서 유관 기관의 혼란을 가중시켰단 비판이 상당하다. 구속기간을 시간으로 할 것인지, 날(日)로 할 것인지 법원 내부서도 정리가 안 됐다는 평가다. 또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 유무 등 윤 대통령의 내란죄 본안 사건을 둘러싼 법원의 고민거리를 검찰의 손을 빌려 해결하려 했다는 토로도 거세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행정처장이 즉시항고를 하라는 취지로 답변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며 ”구속취소 재판을 한 재판부에 대한 명백한 재판개입이며 법관의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것으로, 상급심 재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창원지법 밀양지원 최수영 부장판사는 12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이견이 정면으로 쟁점이 됐을 땐 연구와 숙고를 거쳐 다른 판단이 세워진다면 선례, 관행과 다른 결단이 요구된다”는 취지의 댓글을 올렸다. 지난 10일 부산지법 김도균 부장판사가 “이번 결정은 법리적, 제도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데 대한 반박 차원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법원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충돌하는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 구속기간 도과 후 기소 결정 등 쟁점들에 대한 판단을 이참에 정리하고 싶었을텐데 지귀연 부장판사 한 명이 모든 걸 책임지게 생겼다”며 “법원도 매우 난감할 것이다”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법원행정처장이 진행 중인 재판을 두고 즉시항고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수사와 재판에 개입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