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비급여’ 가격 매기고, 지역병원에 2.3조원…2차 의료개혁안 발표

비급여 진료 안내판을 내놓은 서울 시내 한 정형외과의 모습. 뉴스1

비급여 진료 안내판을 내놓은 서울 시내 한 정형외과의 모습. 뉴스1

의료적 필요를 넘어 과하게 이뤄지는 비급여 진료에 가격이 매겨지고, 환자의 본인부담률은 95%로 적용된다. 중한 과실이 없는 필수의료 분야 사고 때엔 의료진 불기소를 권고한다. 응급·분만 등 필수기능을 맡을 지역병원 육성엔 3년간 약 2조3000억원이 투입된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8차 위원회를 열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전공의 수련 혁신 등을 담은 1차 개혁안을 내놓은 지 7개월 만이다. 이번 2차안의 핵심은 비급여·실손보험 체계 개편과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지역병원 육성이다.

비(非)필수의료 의사 쏠림 등 의료 체계 왜곡을 부추겨온 비급여·실손은 규제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필요성이 낮은데도 별다른 통제 없이 의료기관마다 천차만별로 이뤄지던 과잉 비급여 진료는 '관리급여' 항목을 신설한다. 가격·진료기준 등을 따로 관리하는 식이다. 구체적 항목은 의료계·수요자 등이 참여하는 기구에서 선정하고 가격도 설정할 계획이다. 

해당 진료의 환자 본인부담률은 95%로 적용한다. 미용·성형 목적의 비급여 진료를 하면서 실손 청구용으로 불필요한 건보 진료를 끼워넣는 '병행진료'엔 건보 급여 제한을 강화한다.

비급여 시장을 부풀려온 실손 체계도 달라진다. 향후 출시될 5세대 실손부터 일반·중증 환자를 구분해 자기 부담률을 차등화하는 식이다. 중증이 많은 입원의 본인부담률은 현행 20%로 유지하되, 외래 진료의 본인부담률은 건보와 연동해 올리기로 했다.


지난달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침상에 누운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침상에 누운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를 들어 현재 실손에 가입한 비응급 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외래 진료를 받게 되면 비용의 18%만 내면 된다. 실손 미가입 환자(90%)와 비교하면 훨씬 진료비 부담이 덜하고, 과잉 이용을 막을 장치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5세대 실손 가입자는 자기부담률이 81%로 크게 오르게 된다.

환자와 의료진이 첨예하게 대립해온 의료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안전망도 구축한다. 앞으로 모든 의료기관에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한 필수의료 과목의 보험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올해부터 정부가 비용을 지원한다.

의료사고 발생 후 사법기관으로 넘어가기 전엔 '의료사고심의위'를 거치게 할 계획이다. 심의위는 의료계와 환자, 법조계가 추천한 전문가를 비롯해 20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신속한 수사를 위해 최대 150일 내에 필수의료·중대 과실 여부 등을 심의하고, 심의 기간 중엔 소환조사를 자제할 계획이다.

17일 대전의 한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119 구급대가 환자를 이송한 뒤 또다시 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7일 대전의 한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119 구급대가 환자를 이송한 뒤 또다시 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의료사고 관련 사법체계도 결과보다 원인 중심으로 손을 본다. 현재 경상해에만 적용하는 반의사불벌(합의 시 처벌하지 않음) 범위를 중상해로 확대하고, 사망사고는 필수의료에 한정해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사망사고는 각계 의견이 엇갈리는 만큼 입법 과정서 사회적 합의로 결정한다.

중증·응급 등 필수의료는 심의위를 통해 중대 과실 중심으로 수사·기소하고, 그렇지 않은 과실은 기소 자제를 권고할 예정이다. 다만 단순 과실로 사망한 사고에 대해선 사고 당시 긴급성 등을 고려해 형 감경·면제 등을 적용키로 했다.

수도권·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지역병원 육성에도 힘을 싣는다. 각 지역 내에서 24시간 진료 등을 맡아줄 '지역 포괄 2차 종합병원'에 3년간 2조원을 투하기로 했다. 상급종합병원과 협력해 대부분의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응급 등 필수 진료도 수행하는 일종의 지역 거점 종합병원을 키우는 셈이다. 이를 위해 중환자실 수가 인상, 응급의료행위 보상 강화 등이 이뤄진다.

소아·분만·화상 등 필수진료에 특화된 병원도 키운다. 필수진료 전문성을 갖추고 24시간 진료 등이 이뤄질 경우 충분한 보상을 하기로 했다. 이들 병원엔 연간 1000억원 이상을 지원할 예정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의료공백 재발방지 피해구제 촉구 기자회견에서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추진을 반대하고 있다. 뉴스1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의료공백 재발방지 피해구제 촉구 기자회견에서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추진을 반대하고 있다. 뉴스1

이번 의료개혁안을 둔 각계 입장은 갈린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비급여·실손 개편이 환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의사 진료권도 침해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환자·시민단체는 환자가 의료사고로 숨졌을 경우 합의가 이뤄지면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 면제 특례를 적용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급여 규제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지 않은데다, 당초 도수치료 등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던 관리급여 항목이 발표되지 않은 것도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