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지훈 서울대병원 소아신경외과 교수가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 마련된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부조 앞에 섰다. 피 교수는 2021년 5월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의 기부금 3000억원으로 출범한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의 고형암 세부사업 책임자다. 임현동 기자
그래서 전국 전문가가 뭉쳐 집단 지성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소아 고형암 정밀의료 프로그램'이다. 중심에는 서울대병원 소아신경외과 피지훈 교수가 있다. 2021년 5월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의 기부금 3000억원으로 출범한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의 고형암 세부사업 책임자다. 고형암은 뇌종양·간암 등 신체 장기의 암을 말한다. 피 교수에게 성과와 전망을 물었다.
-사업단을 소개해 달라.
"서울대·서울아산·삼성서울·세브란스 등의'빅4 병원'과 인하대·분당서울대·전남대병원 의사 30여명, 바이오 정보 과학자, 데이터 과학자,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 등이 참여한다. 가동한 지 2년 됐다."
-어떤 일을 하는가.
"환자의 사례(익명화)를 두고 진단과 치료법을 찾는다. 프로그램에 430명의 환자가 등록했다. 사업이 활성화하면서 최근 1년 새 250명이 들어왔다. 국내 소아암 환자의 50~60%로 볼 수 있다."
-어떻게 사례를 분석하나.
"암 조직의 현미경 분석 결과를 두고 병리 전문가 5~6명이 토론한다. 요새는 유전자 분석이 중요해졌다. 12~20명이 온라인으로 참석해 치열하게 논의한다(분자종양보드)."
-주치의 첫 진단이 달라지기도 하나.
"분자종양보드에서 병리·유전체 분석 결과와 주치의 의견을 종합해 진단한다. 뭔가 의심스러우면 자료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한다. 다른 의사의 의견에 자연스럽게 의문을 제기한다. 첫 진단이 달라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를 들자면.
"뇌종양만 해도 대분류 20개, 소분류(아형) 100여개로 갈라진다. 아형이 바뀌는 경우가 많고, 드물게 대분류가 바뀌기도 한다. 그러면 치료법이 달라진다."
-어떤 환자에게 특히 유익하나.
"뇌종양·뼈종양이 재발하면 사실 손쓸 게 거의 없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수술하고, 조직을 떼서 유전자를 검사한다(전장유전체분석). 그러면 재발 전보다 유전자 변이가 크게 증가한 걸 확인한다. 한 두 개 변이에 적합한 표적항암제가 있을 때가 많다. 치료의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다."
-효과를 본 환자가 있나.
"생후 15개월 영아의 골반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병리 분석에서 진단 불가였다. 진단명은 '정체 모를 원시 악성 고형암'. 유전체 분석에서 백혈병으로 진단이 달라졌다.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세계에서 몇 명 안 되는 백혈병 아형이었다. 치료법이 완전히 달라졌고,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다."
-이건희 전 회장의 기부금이 어떤 역할을 하나.
"소아암 정밀의료 프로그램에 연 30억원 지원 받는다. 기부금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환자 보호자에게 '이 전 회장의 기부금으로 검사하고 치료한다'고 먼저 설명한다. 보호자들이 그 뜻에 공감하고 고마워한다. 이 프로그램이 10년 진행되면 3000명의 희귀한 소아암 환자의 데이터가 쌓여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전국 어딜 가더라도 표준적 진단과 치료를 받게 되는 게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