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목길에 왜 이리 꽂혔나…구글이 벌인 '3차 지도전쟁'

글로벌 공룡 vs 토종업체 ‘지도 전쟁’

경제+
대한민국 지도를 놓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발끈했다. 지난달 31일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위치 기반 데이터 수출에 대해 제한을 유지하는 주요 시장이다. (미국 등 기업에) 경쟁적 불이익을 초래한다”고 지적한 것. 구글이 2007년,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 정부에 고정밀 지리데이터 해외 반출을 요청한 뒤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점에 나온 일종의 시그널이다. 이미 전 세계 지도 시장을 독식한 구글은 대체 뭐가 아쉬워서 한국 지도에 눈독을 들일까. 여기에 맞서는 한국 ‘맵테크’(map+tech) 회사들의 ‘한 칼’은 뭘까. 지도 위에 펼쳐지는 비즈니스 전쟁의 모든 것을 담았다.
구글이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 1:5000 축척의 고정밀 지리 데이터를 해외 구글 데이터센터로 이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한 건 지난 2월 18일의 일이다. 1:5000 지도는 50m 거리를 지도상 1㎝로 표현해 골목길까지 세세하게 식별할 수 있는 지도다. 구글은 ‘구글 지도’ 서비스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핵심 인프라인 고정밀 지리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1:25000 축척의 공개 지도 데이터에 항공·위성사진, 장소(POI) 정보 등을 결합해 국내에서 지도를 서비스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론 내비게이션 등 핵심 기능을 서비스할 수 없다는 것.

구글의 요청은 2007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다. 구글에 따르면 구글 지도에서 자동차·도보 길 찾기가 안 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북한 등 세 나라뿐이다. 그만큼 한국은 관광객들에게 불편한 나라고, 구글 지도의 핵심 기능이 구동되면 한국의 관광 수요도 증가할 거라고 주장한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이 발표한 ‘디지털 지도 서비스 규제 개선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구글 지도가 국내서 활성화하면 2027년까지 방한 외국인 관광객이 약 680만 명 증가할 거란 예측이 담기기도 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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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두 번에 걸친 구글의 요청 당시 우리 정부는 국내에 데이터 센터를 설치하고, 군사시설 등 보안 시설을 가림(blur) 처리해 지도에 표시하라는 등 조건을 제시했다. 안보에 대한 우려에서다. 그러나 구글이 이를 거부했고, 정부는 요청을 불허했다. 당시 구글은 “어떤 국가에도 데이터를 별도의 현지 서버에 보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주장했다. 하지만 2024년 기준 구글은 아시아권에 있는 싱가포르·대만·일본 등을 포함해 전 세계에 총 36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서로 간 입장차가 크게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 구글이 세 번째로 반출 허가를 신청했다.

9년 만에 글로벌 공룡이 다시 한반도 지도판에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자 토종 맵테크 강자 네이버·카카오·티맵모빌리티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달 초 국내 회사들이 모두 참석한 국토지리정보원 간담회에서 “국내 업계는 국내법을 준수하지만, 해외 사업자인 구글이 법적 의무를 다할지 의문”이라는 견제 목소리가 나오기도 할 정도. 핵심 기능이 모두 빠진 구글 지도는 그리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지만, 구글이 한국 고정밀 지리데이터 위에 올라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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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디지털 지도 시장 1위는 네이버 지도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2월 네이버 지도의 월간활성이용자(MAU) 수는 2650만명으로, 티맵(1435만명)과 카카오맵(1056만명)을 합친 것보다 많다. 네이버는 국내 최대 수준 장소 정보(POI)에 기반해 탐색-예약-저장-이동-리뷰로 이어지는 ‘올인원 플랫폼’으로 지도 앱을 키워냈다. 이은실 네이버 지도서비스 리더는 “소비자가 지도에서 찾고자 하는 장소 정보나 교통, 내비게이션 등 검색 기능을 한데 모아 구축하고 포털의 각종 블로그 리뷰 등 콘텐트까지 모두 넣은 게 주효했다”며 “지도 앱 안에서 검색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 3~4년 전부터 확실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자들도 저마다 전략으로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티맵은 연간 약 67억건씩 발생하는 내비게이션 데이터를 기반으로 버티컬(특정 분야) 비즈니스 기회를 노린다. 실시간 교통정보뿐 아니라 최적 경로, 다중 경유지 설정 등 다양한 API(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물류·택배·배달·경찰·소방, 지자체 등에 보급하고 있다. BMW와 벤츠 등 18곳 이상의 자동차 제조사(OEM)에 내비게이션이 포함된 인포테인먼트 풀 패키지도 공급하고 있다. 박서하 티맵모빌리티 D&I 부사장은 “데이터 기반 기업 간 거래(B2B)를 확대하면서 지난해 기업 고객 수가 전년 대비 23%, API 사용량은 전년 대비 20% 성장했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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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맵은 카카오톡의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카카오톡 개인·단체 대화방에서 상대방 위치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게 한 ‘톡 친구 위치공유’ 같은 기능이 대표적인 사례다. 버스 배차 간격이 긴 지방 사용자들을 위해선 1초, 10㎝ 단위로 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게 한 ‘초정밀 버스 정보’를 개발했다. 이런 서비스에서 별도의 수익을 내진 않는다. 대신 계열사인 카카오모빌리티가 내비게이션에 기반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손 흔들어 잡던 택시, 전화 걸어 잡던 대리운전 등을 지도로 끌어들인 결과, 모빌리티 플랫폼 수수료 수익으로만 지난해 2126억원을 벌어들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테크 회사들이 지도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첫째로 꼽히는 게 ‘생태계 락인’ 효과다. 네이버 이은실 리더는 “온라인 검색의 모든 것을 네이버 포털이 제공한다면 오프라인 검색의 모든 것은 네이버 지도로 제공하겠다는 게 우리 목표”라며 “네이버 지도가 고도화할수록 스마트 플레이스 검색·예약 채널로 지도가 점점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는 API(프로그램 간 연결 인터페이스)를 통해 이종 산업으로 확산할 수 있고, 독점사업자가 되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국내에서 지도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서비스 대부분에 API를 제공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 등 여타 앱 서비스에 지도가 필요하면 이들 회사의 지도를 가져다 쓴다는 의미다. 두 플랫폼이 당장 API 수익화 고삐를 죄고 있지는 않지만 “한번 특정 지도 API 위에 서비스를 구축하고 나면 다른 API로 옮기는 게 쉽지 않다”(프롭테크 회사 관계자)는 점에 비춰, 언제든 수익화가 가능한 체계를 구축해놨다. 실제 구글이 2018년 기존의 지도 API 무료 제공량을 대폭 줄이고, 무료 초과분에 대한 비용을 크게 인상하는 등 요금제를 전면 개편하고도 멀쩡히 사업을 키워나간 전례가 있다.

국토 면적이 넓지 않은 특성상 사업 기회가 제한적일 거라는 분석에 대해 맵 테크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실내 지도라는 새 ‘간척지’(干拓地)가 생겨나고 있어서다. 공항·시장부터 코엑스나 백화점 등 넓고 복잡한 건물 실내 정보를 지도에 구현하는 것. 주요 건물의 실내 편의 시설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층별로 다양한 입점 정보를 소개할 수 있기 때문에 핵심 비즈니스인 스마트플레이스(네이버), 장소 상세 페이지(카카오) 등 광고 시장 저변을 넓힐 수 있다. 이창민 카카오 지도교통데이터 리더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선 팝업 스토어 등 현실 업데이트 상황을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며 “노량진 수산시장처럼 복잡한 곳도 이미 구현해놨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은 구글이 국내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게 된다면, 그간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무기로 지역에 특화된 맞춤 서비스로 승부할 계획이다. 방경화 카카오 장소데이터 리더는 “팬데믹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백신·마스크 재고, 선별진료소 혼잡도 정보를 실시간으로 구축해 지도 앱에 띄울 수 있는 순발력을 글로벌 서비스가 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