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더헬!" K조선에 홀렸다…트럼프 27년전 목격한 충격 광경

대한민국 히든카드 ‘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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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폭탄을 터뜨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아쉬운 소리를 하는 산업이 딱 하나 있다. 한국이 세계 1위로 꼽히는 조선업이다.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 첫 전화 통화에서도 한국의 조선업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의 선박 수출뿐 아니라 유지·보수·정비(MRO)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K조선에 러브콜을 보냈다. 1960년대만 해도 목선(木船)이나 겨우 만들던 한국이 어떻게 첨단 기술이 탑재된 특수 선박까지 척척 만들어내는 세계 1위 조선 강국이 됐을까. The JoongAng PLUS K조선 연구에서 K조선의 저력을 알아본다.

60년대엔 목선 만들던 한국…민관 힘합쳐 ‘조선 프로젝트’

◆목선 만들던 한국의 조선 프로젝트=“What the hell is that?”(대체 저게 뭡니까?)

1998년 6월 경남 거제시 대우중공업 옥포조선소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시 트럼프사 회장이었던 그는 도크에서 제작 중이던 구축함을 보고 개인 요트용으로 선박을 발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1998년 6월 경남 거제시 대우중공업 옥포조선소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시 트럼프사 회장이었던 그는 도크에서 제작 중이던 구축함을 보고 개인 요트용으로 선박을 발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1998년 6월의 어느 날, 거제시 옥포만의 대우조선소. 헬기에서 막 내린 거구의 50대 백인 사업가가 소리쳤다. 그의 손끝이 가리킨 곳에는 높이 100m의 초대형 크레인이 버티고 있었다. 대우조선소 관계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골리앗 크레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조선소를 찾은 주인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시 그는 세계적인 부동산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트럼프사(The Trump Organization)의 회장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골리앗 꼭대기에 올라타고 싶네요.”

안내를 받아 크레인 정상에 오르자 트럼프의 눈앞엔 축구장 11개 크기의 대형 도크에서 선박 4척이 동시에 조립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엄청난 규모의 선박 건조 현장에 반한 걸까. 그는 즉흥적으로 “저 배를 내 요트로 만들어줄 순 없겠느냐”고 물었다. 트럼프가 가리킨 건 도크에서 건조 중이던 구축함이었다. 당시 제안이 실제 계약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의 그날이 27년 후 한국에 메아리로 돌아올 줄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K조선의 씨앗을 뿌리다=지난 2월 서울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의 눈이 빛났다. 올해 93세의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조선업에 러브콜을 보낸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며 웃었다. 신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초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하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목선 만들다가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 조선

목선 만들다가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 조선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데 고기를 잡든, 배를 만들든 뭐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신 회장은 1965년 미국에서 만난 박정희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미국 생활을 접고 주저 없이 귀국했다고 했다. 조선공업의 중장기 계획 하에, 귀국하자마자 조선소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때는 15만t급이 제일 컸지만, 앞으로는 30만t급, 50만t급 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세계 경제 규모가 계속 커지고 물동량이 늘어날 게 눈에 보였으니까요.”

신 회장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해 경남 거제도에 30만t급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를 짓기로 했다. 현재의 한화오션 옥포조선소다. 그는 “조선공업은 조선·엔지니어링·철강·전자 산업 간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산업입니다. 조선 공업이 우리나라의 고급 산업을 일으키는 기관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라고 회고했다.

업계 상식 깬 ‘1도크 다선박’…20년만에 일본 꺾고 세계 1위 

일단 정부가 나서서 거제도에 조선소를 짓기 시작했지만, 선뜻 조선업에 진출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직접 만나 설득했다. 신 회장은 “설득이 아니라 반(半)강제였죠. 하기 싫다는 사람 불러다 놓고 ‘대한민국을 위해 당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하는데, 당사자들 마음이 오죽했겠어요”라고 말했다.

정주영 현대 회장은 롱바톰 A&P애플도어 회장에게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인의 잠재력을 호소했다. 사진은 당시 500원 지폐 뒷면. [사진 HD현대중공업]

정주영 현대 회장은 롱바톰 A&P애플도어 회장에게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인의 잠재력을 호소했다. 사진은 당시 500원 지폐 뒷면. [사진 HD현대중공업]

◆울산 미포만의 기적=한국 조선업을 말할 때 정주영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정 회장은 직원들에게 “배 만드는 것도 어려울 것이 없다. 우리가 하는 건설 공사를 육지에서 수상으로 옮겨 하는 게 다를 뿐”이라며 조선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조선소 부지로 울산을 택했다. 울산 미포만은 지형이 좋았고, 무엇보다 튼튼한 암반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돈이었다. 정 회장의 목표는 영국의 바클레이즈 은행. 융자를 받기 위해서는 추천서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영국의 유명한 조선 컨설팅 회사 A&P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러 런던으로 향했다.  그러나 A&P애플도어는 단박에 퇴짜를 놓았다. ‘한국 정부의 보증도, 현대라는 기업도, 상환할 능력도 모두 의심스럽다’는 이유였다.

이때 정주영 회장은 바지춤의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였다. “우리 선조들이 16세기에 만든 거북선입니다. 영국이 19세기 철로 배를 만들기 시작한 것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유명한 거북선 일화다. 거북선 때문이었는지, 결국 롱바톰 회장은 추천서를 내줬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영국의 수출신용보증국(ECGD)이 배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야 바클레이즈 은행의 차관을 승인하겠다고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울산 미포조선소 부지 사진과 사업계획서를 들고 세계 곳곳의 선주들을 만나러 다녔다. 설득 끝에 마침내 그리스 선박왕 리바노스가 현대조선소에 초대형 유조선 2척을 주문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일본 꺾고 왕좌에 오르다=1960년대 씨앗을 뿌려놓은 한국의 조선업은 1970년대 본격적으로 일어섰다. 특히 전 세계 조선업 호황기와 맞물리면서 한국 조선소엔 일감이 쌓여 갔다. 울산과 거제의 조선소에선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는 일이 없었다.

“골리앗 꼭대기 올라타고 싶다”…트럼프 ‘옥포조선소 일화’ 유명 

국내 조선업계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기술력을 앞세워 중국과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다. 사진은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사진 HD한국조선해양]

국내 조선업계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기술력을 앞세워 중국과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다. 사진은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사진 HD한국조선해양]

당시 한국 조선의 가야 할 길은 분명했다. 세계 조선 1위였던 ‘철옹성’ 일본을 꺾는 일이다. 조선소들이 고민 끝내 내린 결론은 속도와 가격이었다. 그래서 나온 한국 조선의 역발상은 1도크 다(多)선박 건조 방식이다. 한국의 조선소들은 대형 도크 한 곳에서 소형 선박 여러 대를 만들어내는 전략으로 납기를 앞당겼다. “한국 조선소에 발주하면 품질 좋은 선박을 빨리 받을 수 있다더라”는 입소문이 해외 선주들 사이에 돌았다.

그 결과 한국 조선산업은 야금야금 일본을 압박해 들어갔다. 1973년 점유율 1.3%에서 1975년 3.7%, 1979년 6.3%, 1980년 9.0%, 1982년 9.6%, 1983년 19.2%로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마침내 1983년. 한국 조선업의 역사를 바꾸는 사건이 일어난다. 현대중공업이 단일 조선소 기준 수주·건조량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고 세계 1위(207만9000GT)에 올랐다.

◆조선, 한국 산업의 체질을 바꾸다=조선업의 성장은 산업 생태계 확장 효과를 가져왔다. 해운업 등 전방 산업뿐 아니라 막대한 후판을 공급할 수 있는 철강업을 비롯해 기계, 전기, 토목·건축 등 약 50여 개 후방 산업과 연관돼 있다.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가 매우 큰 만큼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에도 조선업은 중추적 역할을 했다.

특히, 철강과 엔진 등 핵심 부품의 국산화는 조선업 발전의 중요한 축이다. 1973년 포항제철소가 완공되면서 비로소 우리가 만든 철로 배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선박의 심장’인 엔진을 만들기 위한 투자도 이뤄졌다. 현대중공업은 1977년 대형 디젤엔진 사업을 시작, 수입에 의존하던 엔진을 1년 만에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절묘한 타이밍을 만나 대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불철주야 조선소를 지키며 거칠어진 손으로 용접하며 한땀한땀 배를 만들어 온 현장 직원들의 헌신과 노력이다. 세계 1위를 향한 K조선의 항해는 그들의 힘찬 노질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대, 한국 산업 중 거의 유일하게 ‘장밋빛 전망’을 그려보는 산업이 있습니다. 오랜 불황을 딛고 수퍼사이클에 올라탄 K조선은 이 절묘한 시기를 어떻게, 얼마만큼 펼쳐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