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31일(현지시간) 발표한 ‘2025년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 Report)’를 보면, 미국은 한국이 도입하고 있는 무역 장벽(비관세 조치) 21건을 문제 삼았다. 대표적으로 ▶소고기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 ▶외국 방산업체와 1000만 달러(약 147억원) 이상 구매 계약을 맺으면 기술이전 등을 받아내는 국방 ‘절충교역’ ▶다수 미국 대기업이 적용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온라인 플랫폼법 등 경쟁정책 ▶외국인의 원자력발전소 지분 보유 금지 등의 내용이다. 지난해 18건보다는 늘었지만, 예년 약 40건씩 지적사항이 나온 것보다는 적다.
USTR은 예전부터 매년 NTE 보고서를 발간하며 한국의 비관세 조치에 대해 비슷한 내용으로 지적해 왔다. 그러나 정부가 올해 보고서를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국의 대(對) 미국 비관세 조치와 관세율을 고려해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무역 장벽이 높은 국가는 그에 상응하는 관세 조치를 맞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단 NTE 보고서가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부분의 상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했고, 양자는 현안을 정기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언급한 점을 들어 “양국 교역 상황에 대해 여타국 대비 상대적으로 우호적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부는 또 “대부분의 내용이 과거 보고서와 미국의 이해관계 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사항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보고서의 주요 지적사항으로는 특히 소비자 생활과 밀접한 ‘소고기 수입 월령 제한’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보고서에서 USTR은 지난 2008년 광우병 논란 이후 한국이 월령 30개월 미만 소에서 나온 고기만 수입하도록 한 것이 ‘과도기적 조치’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구실로 한국에 소고기 수입 제한 해제를 요구하거나 상호관세 부과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이날 “국민 건강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서 대응할 것”이라며 “미국이 해제 요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수용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므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도 “정부 입장은 명확하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농업인과 국민의 건강과 안정, 경제적 측면에 있어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관세정책 기조가 ‘선(先) 부과 후(後) 협상’인 만큼, 아직 정부에 미국 측의 협상 요청은 없는 상태다. NTE 보고서의 지적사항이 상호관세 조치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오는 3일 이후에야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산업부는 “미국 측과는 실무 채널과 한‧미 FTA 이행위원회‧작업반 등을 통해 협의하며 비관세 조치와 관련한 한국의 진전된 노력을 계속해서 설명할 것”이라며 “상호관세에 대해 한국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는 “미국이 이번 NTE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해 지적한 내용 상당수는 이미 다른 많은 국가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도입하고 있는 비관세 조치”라며 “통상당국은 이 부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흑자를 보고 있는 품목은 상호관세 부과가 불가피할 수 있지만, 미국이 강세를 보이는 서비스업 분야에서의 관세 부과는 피하도록 협상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