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한대행은 1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와 만나 ‘경제안보전략 TF’ 첫 회의를 열었다. 국무총리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한 권한대행이 4대 그룹 총수와 공식적으로 만난 건 처음이다. 〈본지 3월 28일 자 2면 참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오른쪽 둘째)과 4대 그룹 총수가 1일 서울 삼성총 총리공관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날 회동은 트럼프가 관세 발표를 예고한 2일(이하 현지시간) 직전에 이뤄졌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무역장벽 조사 보고서를 발표한 직후이기도 하다. “민관이 함께 대응해야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 한 권한대행과 개별 기업만으로 통상 이슈 대응에 한계를 절감한 4대 그룹의 뜻이 맞아떨어졌다.
삼성은 반도체법 보조금 문제가 급하다. 미국 텍사스에 37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한 보조금(47억4500만 달러)을 트럼프 정부가 지급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2차전지(삼성SDI) 사업도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 여부가 중요하다. SK도 반도체(SK하이닉스)와 2차전지(SK온) 사업에서 삼성과 같은 숙제를 안고 있다.
현대차는 관세 이슈가 보다 직접적이다. 이미 지난달 12일부터 미국이 수입하는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25% 관세 부과 조치가 시행됐다. 3일부터는 미국이 수입하는 자동차에 관세 25%를 부과할 예정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 규모는 347억 4400만 달러(약 51조원)다. 이 중 미국 수출이 707억8900만 달러로 절반(49.1%)을 차지한다. 정의선 회장이 지난달 24일 백악관에서 “향후 4년간 210억 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트럼프 정부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LG는 미국 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백색 가전’ 분야에서 고민을 안고 있다. LG전자의 주요 생산기지인 멕시코에 트럼프가 두 차례 유예한 25% 관세를 4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앞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세탁기에 20~50% 관세를 무는 등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경험한 트라우마도 있다. 2차전지(LG에너지솔루션) 분야에선 삼성·SK와 마찬가지로 보조금 지급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4대 그룹 총수는 이날 회의에서 미국과 관세·보조금 분야 협상에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줄 것을 한 권한대행에게 요청했다. 별개로 국내에서 관련 분야 세제 지원 등 지원책을 마련해 달라고도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통상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했다”며 “기업도 국익 차원에서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회장님들이 대표하는 각 분야의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보완·강화하는 쪽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정부 측에선 최상목 경제부총리, 조태열 외교부 장관, 안덕근 산업부 장관,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등이 회의에 참석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를 계기로 향후 경제안보전략 TF를 민간(재계)도 참석하는 식의 민·관 공동 대응체계로 운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