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의원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TF1의 인터뷰에 출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파리 형사법원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르펜 의원이 유럽연합(EU)의 자금을 유용한 혐의를 유죄로 판결하고 징역 4년에 벌금 10만 유로(약 1억5000만원)를 선고했다. 법원은 지난 2004~2016년 르펜 의원 등 RN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유럽의회 보조금 290만 유로(약 46억원)를 당 운영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르펜 의원은 법원 판결에 즉각 반발하고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밤 TF1 방송에서 "나는 결백하다"며 "법원이 민주주의에 반하고 프랑스 국민의 선택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 재량으로 피선거권을 5년간 박탈해 차기 대선 출마는 불투명하다. 프랑스 현행법상 징역형이나 벌금은 항소 기회가 남아있는 한 무죄로 간주하지만, 법원이 내린 '선거 출마 금지령'은 즉시 효력이 발한다. 최소 1년이 걸리는 항소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르펜 의원은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됐다.
바르델라 나설까…"대안될지 의심"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왼쪽)와 마린 르펜 의원. AFP=연합뉴스
르펜 의원은 현직 에마뉘엘 마크롱의 최대 경쟁자이기도 하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33.9%, 2022년엔 41.5%를 득표해 마크롱 대통령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7월 총선에서 RN이 123석을 차지해 제1 야당으로 거듭나며 르펜 의원은 차기 유력 주자로 떠올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RN은 탑다운 방식의 조직으로 르펜이 모든 이슈나 선거 전략의 최종 의사 결정권자였다"며 "(르펜의 부재로) RN은 전례 없는 위기에 빠졌다"고 짚었다.
오히려 이번 판결이 극우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가디언은 "증거가 충분하더라도 법원 판결은 정치적으로 엄청난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랬듯 르펜의 지지자와 심지어 반대자까지 자극할 수 있다"고 짚었다.
RN이 르펜 의원의 후임으로 조르당 바르델라 당대표를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차기 대선에서 르펜 의원이 대선 주자로 나서고, 바르델라 대표를 총리로 내세우려 했던 계획을 뒤집어 바르델라가 대통령 후보로, 르펜이 총리직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29세의 바르델라 대표는 르펜 의원의 지지에 힘 입어 당대표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바르델라 대표의 한계도 명확하다. FT는 "바르델라는 당 내부에서 지역 운영에 소홀하고 소셜미디어 인기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는다"며 "RN조차 바르델라가 르펜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역량이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극우 동맹, "르펜 지지" 한목소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점점 더 많은 유럽 수도가 민주주의 규범을 위반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X(옛 트위터)에 "내가 마린이다"라며 지지를 밝혔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도 르펜 의원의 판결에 대해 "매우 큰 문제"라며 "많은 사람이 그녀가 무엇에 대해서도 유죄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르펜 의원이) 유력 후보지만 5년간 출마가 금지됐다"며 자신이 지난 2020년 대선에서 형사 기소됐던 상황을 언급하며 "매우 이 나라(미국)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