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조강지처(糟糠之妻)와 풍몽룡(馮夢龍)

말이 먼저고, 글은 나중이다. 태초에 우리 인류는 몸동작을 곁들인 소리와 말로 소통을 시작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문자를 발명했다.

소설 장르도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초창기엔 글이 아닌 말로 시작했다. 소리로도 서사(敍事. narrative)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명이 발달해 이제 글과 영상으로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결합해 생동감 있게 소개할 수 있게 됐다.

조강지처(糟糠之妻). 바이두

조강지처(糟糠之妻). 바이두

이번 사자성어는 조강지처(糟糠之妻. 지게미 조, 겨 강, 어조사 지, 아내 처)다. 앞 두 글자 '조강'은 '술 만들고 남은 찌꺼기, 그리고 곡식 껍질'이다. '지처'는 '~한 아내, 즉 배우자'를 뜻한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지게미와 겨로 끼니를 이을 정도로 가난하거나 낮은 지위에 머물던 무렵 함께 고생한 배우자'라는 의미가 만들어진다.

'중국 소설의 아버지'로 칭해지는 풍몽룡(馮夢龍. 1574~1646)은 명나라 말기 쑤저우(蘇州)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과거 시험의 첫 관문을 통과하고 이른바 '수재(秀才)'가 됐다. 그러나 두 번째 관문 통과에 실패하자 그는 시험 과목 학습을 중단한다. 이후 통속(通俗) 문학의 수집, 수정, 출판 등에 매진해 중국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풍몽룡(馮夢龍). 바이두

풍몽룡(馮夢龍). 바이두

50대에 풍몽룡은 관료 생활에 인연이 닿아 푸젠(福建)성 서우닝(壽寧)현의 수장인 지현(知縣)에 임명됐다. 하지만 관료 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아 곧 사직하고 쑤저우로 귀향했다. 흉년이 이어지고 망국의 조짐이 뚜렷한 난세였기에 관료 생활이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1644년 명나라가 망하자 여생을 반청(反淸) 활동에 힘썼다. 향년 73세로 세상을 떴다.


그가 이룬 문학적 성취 덕분에 사서삼경(四書三經) 학습만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던 지식인들이 문자를 통한 서사 오락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으로서 그가 이룬 대표적 성과엔 단편 소설집 '삼언(三言)'과 대하 역사 소설 '신열국지(新列國志)'가 포함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약 550년 역사를 담아낸 '신열국지'는 흥미진진하고 탄탄한 스토리 전개로 지금도 여전히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유세명언(喩世明言)', '경세통언(警世通言)', '성세항언(醒世恒言)', 이 세 권의 총칭인 '삼언'에는 사랑과 행복을 꿈꾸는 젊은 여인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물론 권력을 가진 이들의 추악한 욕망 추구를 폭로하는 내용도 있다.

'경세통언' 제27권에 '김옥노봉타박정랑(金玉奴棒打薄情郞)' 이야기가 나온다. 줄거리는 '김옥노라는 여인이 박정한 남편을 몽둥이로 응징한다'는 제목 그대로다. 제1차 '아편전쟁(Opium War)' 이후 홍콩에 거주하게 된 서양인들에 의해 여러 차례 짧은 소설 형식으로 번역되어 서양에도 널리 알려졌다. 이 작품에는 근대화 이전 중국 사회의 계층 갈등과 어두운 구석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경세통언(警世通言). 바이두

경세통언(警世通言). 바이두

스토리 전개는 복잡하지 않다. 대대로 거지 왕초를 지낸 집안에서 태어난 여주인공이 재력을 바탕으로 가난한 수재를 남편으로 맞이한다. 하지만 훗날 출세한 남편이 헌신적 뒷바라지를 배신하고 밤에 그녀를 배에서 떠밀어 강물에 빠뜨린다. 완전범죄로 여겼지만 마침 고위 관리가 탄 배를 통해 그녀는 극적으로 구조된다. 이후 일련의 복수극이 진행된다. 무정한 초임 관료인 남편이 몽둥이로 얻어맞는 통쾌함을 독자에게 선사한 후, 참회하고 신분 차이를 잊고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이혼이 흔치 않았던 당시 세태를 거스르지 않는 무난한 엔딩 처리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조강지처. 이 네 글자와 짝을 이루는 말이 있다. 빈천지교(貧賤之交)다. 비슷한 표현으로 환난지교(患難之交), 포의지교(布衣之交), 빈천지지(貧賤之知) 등이 있다. 반대말은 주육붕우(酒肉朋友)다.

우정과 부부의 인연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성공한 다음에 '배신의 유혹'을 경계해야 하는 부분에선 서로 똑 닮았다. 상대가 느끼는 큰 실망과 상실감에서 특히 그렇다. 그래서인지, '악인인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지표 가운데 이것이 으뜸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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