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영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서 열린 국립극단 연극 '그의 어머니'연습실 공개에서 열연하는 모습. 김선영은 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다. 연합뉴스
올해 봄을 수놓은 국내 연극 무대 캐스팅은 화려하다. 김선영(48)은 2일 막을 연 ‘그의 어머니’로 연극 무대에 선다. 7년 만의 연극 무대 복귀다. ‘그의 어머니’는 영국 극작가 에반 플레이시의 작품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아들을 마주한 어머니의 맹목적인 모성애를 그렸다.
오는 5일 개막인 연극 ‘랑데부’에는 박성웅(52), 이수경(43) 등이 출연한다. ‘랑데부’ 연출자 요세프 케이(한국명 김정한)가 ‘두 남녀 간 사랑이자 대결이야기’라고 표현한 이 작품은 이수경의 첫 연극 도전작이다. 박성웅은 지난해 이 작품 초연으로 24년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했다.
지난해에 연극 ‘아트’에 출연하는 등 꾸준히 무대에 오른 엄기준(48)은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가 미국에서 실제 일어난 마녀재판을 바탕으로 쓴 ‘시련’에 출연한다. 이달 9일부터 공연되는 작품이다.

배우 이혜영은 13년에 연극 '헤다 가블러'에 출연한다. 사진 국립국단
다음 달에도 스타 배우들이 대거 무대에 등장한다. 이혜영(62)과 이영애(54)는 비슷한 시기 같은 작품으로 무대에 서 눈길을 끈다. 이혜영은 국립극단, 이영애는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에서 주역을 맡는다. 이 작품은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으로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 심리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영애의 마지막 연극 출연은 32년 전인 1993년 ‘짜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혜영은 8년 만의 연극 무대 귀환작이다. 헤다 역할은 13년 만에 다시 맡았다. 이영애의 헤다는 다음달 7일부터, 이혜영의 헤다는 같은 달 8일부터 관객과 만난다.
손호준(40)과 유승호(31)는 다음달 10일 개막 예정인 ‘킬링 시저’에 함께 출연한다. 옛 로마의 절대적 지도자였지만 황제에 오르기 전 암살을 당하는 시저를 둘러싼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극이다. 손호준은 ‘시저’, 유승호는 ‘브루투스’ 역이다.
둘은 지난해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프라이어 윌터’ 역에 멀티 캐스팅돼 첫 연극 무대에 함께 도전하기도 했다.
신구(89)와 박근형(85)이 호흡을 맞춰 화제를 모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다음 달 9일 시작한다.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두 방랑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고도’라는 인물을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내용의 부조리극이다. 둘이 호흡을 맞추는 마지막 ‘고도를 기다리며’다.
지난해 전도연(52‧벚꽃동산)이 27년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고 조승우(45‧햄릿)가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한 것처럼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굳건한 입지를 다진 배우들이 잇따라 연극 무대로 향하는 움직임이 이어지는 것이다.
배우들은 무대가 주는 현장감이 방송이나 영화의 ‘촬영’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또 무대는 연기에 대해 더 깊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김선영은 오랜만에 배우로 연극 무대에 서는 이유에 대해 “공부할 때가 됐다”라며 “촬영은 굉장히 순간적이고 잘 찍어 놓으면 끝이지만 연극은 반복해서 ‘베스트’를 뽑아 내야하고 단단하게 인물 공부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영애는 “헤다 가블러는 운명처럼 다가온 작품”이라며 “32년 만에 서는 연극 무대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드라마, 영화 등 좋은 작품을 많이 했지만, 배우로서 항상 목마름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첫 연극 무대 도전인 이수경도 ”그동안 브라운관에서만 활동하면서 놓쳤던 부분도 있다”라며 “조금 더 디테일하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라 공부가 많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영애가 연극 '헤다 가블러'에 출연한다. 이영애가 연극 무대에 서는 건 32년 만이다. 그는 "헤다 가블러는 운명처럼 다가온 작품"이라고 했다. 사진 LG아트센터
영화와 드라마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연극 시장이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스타 배우의 잇단 연극행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연극 예매 규모는 지난해 744억원으로 2023년(621억원) 대비 19.8% 증가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드라마나 영화 시장이 부진하며 관련 출연 기회도 줄어드는 분위기”라며 “반면 연극을 찾는 관객이 늘고 화제성도 커지고 있는데 배우들이 연극 무대를 외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제작사 입장에서 배우의 이름값은 마케팅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고 배우도 연극 무대 도전이 훌륭한 홍보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만큼 제작사와 배우 모두 ‘윈윈’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유명 배우들의 연극 무대행이 잇따르고 있다. 배우 조승우는 지난해 '햄릿'을 통해 첫 연극 무대에 도전했다. 사진 예술의전당
김교석 문화평론가는 “스타 배우의 연이은 연극 무대 출연은 순수 예술인 연극계에 신규 관객을 더 끌어모으며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라며 “다만 몇몇 대형 흥행작에 대한 쏠림과 이에 따른 소규모 연극 외면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 만큼 소형 연극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