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퇴직연금 상품을 다른 금융사로 옮길 수 있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시작됐다. 약 4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에서 '머니무브'를 기대하는 은행·증권업계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해 10월31일 서울 한 증권사 영업점에서 관계자가 관련 홍보물을 부착하는 모습.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개인형 퇴직연금(IRP) 고객 4000명에게 최대 3만원 상당의 배달의민족 상품권을 증정하는 ‘IRP 우리로 넘어와~!’ 이벤트를 오는 6월 말까지 진행한다. 신규 IRP 계좌를 개설하거나, 100만원 이상 입금한 고객이 응모 대상이다.
신한은행도 오는 30일까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및 개인형 IRP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노후준비, 상장지수펀드(ETF)로 더 크게’ 이벤트를 진행한다. ETF 상품 매수 고객 1000명에게 추첨을 통해 스타벅스 쿠폰, 치킨 상품권 등을 준다. 한 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도입 후 ‘머니무브’가 잦아지면서 고객 확보를 위한 이벤트도 상시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물이전이란 현재 가지고 있는 퇴직연금을 다른 금융사로 옮기려고 할 때 기존 상품을 해지하거나 현금화할 필요 없이 그대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거래 비용, 세금 등 불필요한 부담이 사라지면서 자금 이동이 잦아졌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3개월 동안 총 2조4000억원의 적립금(약 3만9000건)이 퇴직연금 실물이전을 통해 옮겨졌는데 은행에서 증권사로 순유출된 금액이 4109억원에 달한다.
이에 은행들은 고객을 사로잡기 위한 차별화 전략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WM고객그룹 연금사업본부 내에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 협의체’를 신설하고, 고객 수익률 제고를 위한 과제를 추진 중이다. 특히 ‘초개인화 연금 수익률 관리시스템’을 구축해서 연령별ㆍ투자성향별로 고객군을 나눈 후 맞춤형 자산관리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28일 금융권 최초로 개인형 IRP의 ‘로보어드바이저 일임운용 서비스’를 개시했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통해 투자자 성향에 따른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자동 생성하고 그에 따라 IRP 적립금을 자동 운용하는 서비스다. 이를 통해 바쁜 직장인들의 자산운용 부담이 줄어들고, 수익률은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전국 8곳인 연금 전문 상담센터 ‘연금 더드림 라운지’도 올해 최소 1곳 이상 추가 오픈할 계획이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2월 개인형 IRP 연금 지급 고객을 대상으로 수수료 면제를 시행했다. 3월 말 기준 ETF 115종, 펀드 542종으로 확대하는 등 상품 라인업도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실적배당형 상품 라인업 1위(543개)로 고객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주된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또 기존 거점 점포에만 배치했던 연금전문가(168명)를 올해 전 영업점(555명)에 확대 배치했다. 신한은행은 퇴직연금 고객관리센터의 영업점 지원을 강화했고, 기업 퇴직연금 가입 고객을 위한 고객관리 전담팀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은행들은 탄탄한 고객기반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연금 운용으로 시장 우위를 점해왔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12개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액은 225조7684억원으로 금융권 전체(427조1916억원)의 52.8%를 차지한다. 하지만 최근 증권사가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며 점유율을 높이는 추세다. 국내 14개 증권사의 적립금은 103조 9257억원(24.3%)으로 은행 다음이다. 지난해 2분기부터 보험을 앞질러 전체 업권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저출생ㆍ고령화로 노후 대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퇴직연금은 놓쳐선 안 될 ‘미래 먹거리’가 됐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규모는 2037년 1000조원, 2055년 1858조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은 안정적인 수익률과 고객 접근성, 증권사는 다양한 포트폴리오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익률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면서도 “당장의 고수익만 추구하기보다는 금융사를 바꿀 때 발생할 수 있는 중도 해지 시 적용 이율. 예상 손실액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