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관세는 26% 미국산은 0%, '껍데기'만 남은 한미 FTA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에 관한 행정명령에 사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EPA=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에 관한 행정명령에 사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EPA=연합뉴스

 
미국이 한국에 26%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그동안 한미 양국간 사실상 0% 관세의 근거가 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는 껍데기만 남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미국은 2일(현지 시간) 20개 FTA 체결국 중 한국에 가장 높은 관세율을 부과했다.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관세를 매기지만, 한국은 FTA에 따라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관세 불균형’에 놓이게 됐다. 한미 FTA의 재개정 또는 별도의 협정 체결이 불가피해졌다. 

 
미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미국은 FTA 체결국 가운데 호주·칠레· 콜롬비아·페루·싱가포르 등 11개국은 기본관세율인 10%를 적용했다. 이스라엘(17%)·니카라과(18%)·요르단(20%) 등도 한국보다 낮다.

한미 FTA는 2012년 발효됐고, 2019년에 일부 개정됐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에 수출하는 대부분 제품에 관세를 면제받으면서 미국 시장에서 주요 경쟁국인 일본·유럽연합(EU) 등에 비해 가격 경쟁력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 측과 협의 과정에서 “한미 FTA 체결로 사실상 관세를 매기지 않는 양국의 상황을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한국이 미국을 따라 관세율을 높이기는 힘들다. 한국 입장에서는 ‘상호 공정’을 유지할 수 있지만, 미국은 이를 '보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복에 대해 몇 배 더한 ‘응징’으로 되갚고 있다. 실제 한국의 통상전문가들 사이에선 FTA를 무력화한 미국에 적극적으로 맞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주한미군 등 안보 문제가 얽혀있는 한국이 미국을 자극하는 것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국제법이나 WTO(세계무역기구) 등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의 국가비상경제권법(IEEPA)를 근거로 뒀다. 대규모의 지속적인 무역 적자로 인한 국가 비상 상황을 해결하고자 부여된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정부에선 법적 대응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다. 유명무실해진 WTO를 통한 제소 역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FTA를 아예 무력화하기도 어렵다. FTA에는 관세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개방·인증제도·원산지규정 등 비관세적인 규정이 포함돼 있어서다. FTA 재협상을 진행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한국은 FTA 틀 안에서의 협상하는 것이 상호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지만, 이를 미국이 받아들이지는 미지수다. 재협상을 위해서는 양국 모두 국회 인준을 거쳐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국 FTA와 별개의 협상으로 관세율을 낮추는 게 현실적인 차선책인 셈이다. 

아울러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맺은 멕시코와 캐나다가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한국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당초 정부는 이들과 함께 상호관세를 맞을 경우 앞선 협상의 추이를 지켜보며 전략을 세울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날 미 백악관은 "캐나다와 멕시코는 이번 행정명령 영향을 받지 않으며, USMCA 기준에 맞는 제품은 무관세 적용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초 캐나다와 멕시코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가 USMCA를 준수하는 제품에 한해서만 이날까지 무관세를 적용하기로 한 바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치를 유지하겠다면서 향후 이 조치가 중단돼도 USMCA 준수 상품에 대한 비과세는 유지하고, 미준수 상품에 대한 관세율은 25%에서 12%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들 나라에 대한 고율 관세로 미국 경제 악영향이 예상되자 한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한 통상전문가는 “멕시코 아보카도, 캐나다 목재 등과 같이 미국이 양국으로부터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초크 포인트(choke point·요충점)’가 있다”며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을 염두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는 이날 “미국이 한미 FTA를 지목해 얘기했던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에 한미 FTA 재협상을 얘기는 성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