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헌정개혁포럼…학계·정계 제언
올 오어 낫싱의 검투사 게임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폭풍 같았던 계엄과 탄핵 정국이 막바지 고비를 맞고 있다. 개헌 요구가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분출되고 있다. 느닷없는 계엄령이 오히려 개헌의 적기임을 부각했다는 평가도 있다.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우윤근 전 주러 대사

강원택 서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우윤근=이번엔 그냥 절충해 버려선 안 된다. 철저하게 반성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우린 그걸 잘 참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87년 체제도 철저한 반성이 아니라 한시적인 미봉책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직선제만 하자, 이런 식이었다.
▶박명림=현 체제가 지속돼선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 비전과 가치, 공통의 준거가 뭔지 합의가 안 되니 국정의 연속성도 없고, 그냥 ‘진보 공화국’ ‘보수 공화국’ 등 점점 멀어지는 2개 공화국으로 가고 있다. 언어적·심리적 내전 상태에서 이미 무력적·신체적 내전으로 들어갔다. 과거 광화문에 많이 몰리느냐, 서초동에 많이 몰리느냐 이러다가 서부지법 사건에선 몸이 총탄이 되고 무기가 되는 지경에까지 왔다.

김주원 기자
▶정종섭=민주주의가 되려면 사고방식이 권력 지향이 아니라 기능 중심이어야 하는데, 우린 훈련이 안 돼 있다. 그러니 모든 선거는 이기는 방법이 뻔하다. 편을 가르고 (자기 진영의) 대표 무당을 찾아내고 굿판을 벌인다. 굿판을 벌일 수 있는 선수를 내야 이긴다. 무당 기질이 없는 후보는 필패다. 일종의 샤머니즘이 정치 저변에 깔려 있다. 권력을 잡으면 내 마음대로 한번 해봐야지, 많은 국민이 그런 생각을 한다.
▶강원택=대통령 혼자 이끌고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많은 이가 역할을 분담해 함께 끌고 나가는 형태가 오늘날의 한국에 보다 적합하다. 리더가 잘못된 판단을 해도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다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하경=1982년 중국의 덩샤오핑이 당 간부들에게 “어떤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돼도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분산
▶정종섭=권력 분산이 핵심이다. 국민들이 대통령은 직접 뽑고 싶어 하니 직선제를 그만 하자고 할 수는 없다. 단임제의 문제도 있으니 4년 중임 대통령 방식으로 하되 대신 행정의 책임을 총리에게 지워야 한다. 장관도 사실상 총리가 지명하는 것이다.
▶우윤근=‘갈등 공화국’ 구조를 바꾸려면 내각제적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내각 구성권은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행사하되 ‘직선제 대통령’에게는 통일과 외교안보 부총리 등에 대한 추천권을 준다. 총리에 대한 의회의 건설적 불신임제와 대통령·총리의 국회해산권을 함께 인정하되, 총리 취임이나 총선 이후 1년 또는 2년 내엔 불신임이나 해산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
▶박명림=인물 한두 명이 국가의 근본 원칙이나 방향을 좌우해선 안 된다. 인물 중심에서 제도 중심으로 가야 한다. 권력을 분산해야 의견과 이익의 조정 과정을 거쳐 실용주의가 등장한다. 검찰·감사원·선관위·공정위 등 권력 투쟁의 중심에 서 있는 기구들을 집행부(행정부)로부터 분리시켜 4권분립의 권력구조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강원택=행정은 총리가 담당하더라도 인구·기후·지방소멸 등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이 필요하고 정파적 입장 차가 크지 않은 정책 이슈들에 대해선 대통령 어젠다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할 필요가 있다.
▶박명림=과거 민주당엔 권력 분산과 연정엔 결사 반대하면서 4년 중임제에만 찬성하는 사람이 많았다. 협치나 연정보다 청산과 타도, 척결 이런 것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분권을 하지 않고 임기만 4년 중임으로 한다면 그건 대통령 임기를 8년으로 연장하는 것뿐이다. 8년 단임제와 다를 게 없다.
▶이하경=지금처럼 국회의 권한이 과도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문제도 있다.
▶우윤근=국회의 권한이나 1당 독주에 대한 견제는 헌법보다 선거법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독일처럼 중대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를 실시해야 다당제가 이뤄지고, 협치와 연정의 기반이 생긴다.
개헌이 쉬운 연성헌법으로
▶이하경=이번에 우리 헌법의 허점들이 다 드러났다. 계엄 선포 절차나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등을 놓고 혼란이 많았다.
▶정종섭=미국의 부통령은 대통령이 일할 수 없을 때 권한대행의 역할로 뽑는다. 우리는 부통령이 없어 이런 혼란이 생기는데, 어쨌든지 권한대행이 되면 대통령 권한을 모두 행사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도 해야 한다. 이번에 큰 논란을 낳았던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도 마찬가지다. 독일 같은 경우엔 예비재판관까지 미리 다 뽑아 둔다.
▶강원택=계엄과 관련된 절차 등 크게 국민적 논란이 없는 부분에 집중해 고칠 수 있는 것을 먼저 고칠 수도 있다. 일단 개헌을 한번 해내면 그 다음에 다른 개헌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 어렵지 않게 또 할 수 있지 않겠나.
▶정종섭=독일의 경우 기본권 문제는 국회가 함부로 손댈 수 없도록 국민투표를 거치게 하지만 정부 조직 등의 문제는 국회 의결로 가능하다.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헌법 발표 뒤 70년 동안 개헌을 약 60번이나 했다.
대통령 호칭의 변경
▶박명림=대통령이란 용어는 페리 제독의 개항 요청 때부터 일본이 만들어 사용했다. 우리는 과거 대한제국 시절 ‘대통령’이란 명칭을 ‘임금’이나 ‘황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종섭=대통령을 영어로 번역하게 되면 ‘그레이트(great)’가 앞에 붙게 된다. 그러니 ‘현대판 군주’ 같은 요소가 있다. 헌법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개념이다. 대통령 대신 ‘국가 수반’이든, ‘집정관’이든 어쨌든 용어를 바꿔야 한다.
▶이하경=과거 개헌 시도 때도 그랬듯 차기 권력에 가장 접근해 있는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상대적으로 개헌에 소극적이다.
▶박명림=집권해 봤던 김영삼계, 김대중계, 노무현계, 이명박계, 박근혜계, 문재인계 모두가 개헌을 찬성할 때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대표나 민주당이 “우리는 모두를 다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하면 환상이다. 계엄 전엔 ‘임기 단축 개헌 국회의원 연대’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42명이나 참가했다. 계엄이 선포됐으면 이들이 개헌을 더 주장해야 하는데 갑자기 입을 닫는 게 말이 되나.
▶강원택=사람들이 윤석열과 이재명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윤 대통령이 탄핵되면 이 대표에게 공동 책임을 물으려 할 수도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5년 내내 지금과 같은 프레임이 또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중앙일보 헌정개혁포럼=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위기를 국가 시스템 재설계를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자는 취지에서 지난 1월 9일 발족했다. 헌법학 권위자인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원내대표를 지낸 ‘개헌 전도사’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정치학자인 강원택 서울대 교수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가 위원으로 참여했다. 다양한 개헌 관련 제안을 내놓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