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72일만에 100년 질서 무너뜨렸다…자유무역의 종언[view]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72일만에 글로벌 무역 시스템의 시계를 100년 전으로 되돌렸다. 2일(현지시간) 전 세계 모든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미국 시장에 일방적으로 높은 담장을 쌓아 올리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각국별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오늘은 미국 해방의 날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각국별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오늘은 미국 해방의 날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가 새겨진 붉은색 모자를 들고 백악관 로즈가든에 나타난 트럼프 대통령은 연단에 서서 “미국은 수십년 동안 가까운 나라와 먼 나라, 친구와 적국 모두에게 약탈당하고 강탈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최소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특히 최악의 침해국(worst offenders)으로 지목한 67곳에는 차등을 둔 징벌에 가까운 고율의 관세가 통보됐다. 최소 관세는 5일, 각국별 차등관세는 9일부터 적용된다.

6·25 전쟁 이후 72년간 혈맹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은 최악의 침해국 범주에 포함되면서 미국에 수출되는 모든 물품에 26%의 관세를 부과받는다. 이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는 물론,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핵심 동맹국 중에서도 가장 높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국의 관세율을 직접 언급하면서 한국만 쏙 빼버렸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현장 발표 때 사용한 자료에는 한국에 대한 관세가 25%로 표기됐지만, 이후 백악관이 공개한 행정명령 부속서에는 관세율이 26%로 더 높아졌다. 백악관은 달라진 수치에 대한 문의에 “행정명령을 따르는 게 맞다”면서도 혼선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선 별도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발표한 각국별 관세율 자료(왼쪽)에 한국에 대한 관세가 25%로 표기돼 있다. 반면 이후 백악관에서 공개한 행정명령 부속서에는 관세율이 26%로 바뀌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발표한 각국별 관세율 자료(왼쪽)에 한국에 대한 관세가 25%로 표기돼 있다. 반면 이후 백악관에서 공개한 행정명령 부속서에는 관세율이 26%로 바뀌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각국에 대한 관세를 발표하며 “무역 측면에서 친구가 적보다 나쁘다”고 말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전쟁이 우방마저 배제하고 오로지 ‘돈의 논리’로만 진행될 것임을 시사한 말로 해석된다.

주요국 중에서는 미국의 공식적인 위협국인 중국이 34%로 높은 관세율을 부과받았다. 중국에는 기존의 20% 관세에 상호관세가 추가되기 때문에 실제 관세는 54%가 된다. 산술적으로 100원짜리 물건이 미국에선 최소 154원이 된다는 뜻이다.

이밖에 유럽연합(EU)에는 20%, 베트남 46%, 대만 32%, 일본 24%, 인도엔 26%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중 대만에 부과된 관세가 중국과 2%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점도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시간 2일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각국별 상호관세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시간 2일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각국별 상호관세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 입장에선 자동차·반도체 등 핵심분야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과 EU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음에도 한국보다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은 점이 뼈아프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비관세 장벽 등을 감안해 한국의 대미 관세율을 50%로 산출하고, 절반에 해당하는 관세를 책정했다고 했다. “선한(good) 미국이 할인(discount)해 줬다”고도 했지만 관세율이 50%가 된 계산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2007년 체결한 한·미 FTA에 따라 미국 공산품에 적용되는 관세는 0%다. 예외 품목을 포함한 평균 관세율도 0.79%에 불과하다.

다만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는 이미 발표된 철강과 3일부터 부과된 자동차에 대한 25%의 품목관세와 중복되지 않는다. 의약품·반도체·목재 등 품목별 관세가 예고된 분야도 예외다. 이에 따라 자동차와 반도체 등 주요 수출품은 그나마 경쟁국과 동일한 관세를 부과받게 됐다. 반면 한국 기업의 제조 공장이 밀집된 베트남에 46%의 관세가 결정된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현대자동차 대리점 밖에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현대자동차 대리점 밖에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CNN 등 미 언론들은 이날 발표된 상호관세를 1930년대 세계 무역전쟁에 이은 대공황을 야기한 것으로 평가받는 ‘스무트-홀리(Smoot-Hawley) 관세법’에 비유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1929년 보호무역주의자 리드 스무트 상원의원과 윌리스 홀리 하원의원이 미국 경제 보호를 명분으로 평균 59%의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전 세계는 맞불 관세로 맞서면서 관세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무역이 급감하면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9% 감소했고, 실업률은 25% 치솟았다.

또 미국발 경제 위기는 도미노처럼 번져 유럽에서 나치 등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 결과가 2차 세계대전이다. 이 때문에 경제학계에선 이 법을 ‘100년 전의 악령’으로 평가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는 100년 전과 유사하게 진행될 기류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전쟁엔 우군과 적군의 개념마저 사라졌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당장 관세의 직격탄을 맞은 중국은 상무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중국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히 반격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중국은 이미 합성 마약 ‘펜타닐’ 유입을 이유로 20%의 관세를 부과받을 때도 미국산 농축산물과 에너지 등에 대한 맞불 관세를 부과했다.

 
우방인 EU의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도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을 ‘해방의 날’이라고 하지만 시민의 입장에선 ‘인플레이션의 날’이 될 것”이라며 “미국의 관세 부과는 부당하고 불법적이며 불균형적”이라고 비판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역시 “친구로서 할 일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순순히 받아들이라”며 “모든 국가에 보내는 충고는 보복에 나서지 말라는 것이고, 보복 조치를 하면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서명된 행정명령엔 관세 부과를 중단하거나 보복 조치에 따른 관세율 인상 또는 인하 등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의사 결정의 주체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 장관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 “관건은 그들(다른 국가들)이 ‘우리의 농산물을 수입할 것인가, 우리를 공정하게 대할 것인가, 우리를 공정하게 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시간 2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항구에 해외에서 수입된 차량적이 주차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현지시간 2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항구에 해외에서 수입된 차량적이 주차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싱크탱크 우드로 월슨센터의 트로이 스탠거론 한국사·공공정책연구센터 국장은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이미 보복 여부는 결과에 큰 차이를 내지 않는 상황이 됐다”며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도 보복 카드를 제외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의 이해관계에 호소할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며 “한국의 강점인 동시에 미국이 한계를 가지고 있는 조선과 반도체 등을 카드로 제시할 경우 유익한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상호관세의 예외 대상엔 ‘미국에서 구할 수 없는 에너지 및 기타 특정 광물’이란 항목이 맨 아랫줄에 명시돼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 역시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국의 눈치를 봐야 할 약점은 존재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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