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에서 만난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은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글로벌 무역 질서와 미국의 경제 구조를 재편하려 한다”며 “트럼프 파고 앞에서 오랜 경쟁 관계지만 이익이 일치하는 일본과 전략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1년 문재인 정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 본인제공
여 선임위원은 문재인 정부시절인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지금은 미국의 대표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에서 선임위원을 맡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통상전문가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목적은.
“법인세를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낮춰주면서 외국에 관세를 때려 이를 보충하겠다는 의도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트럼프가 글로벌 무역체제와 미국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는데, 한국도 밀린 숙제를 정리하듯 구조적인 변화로 대응해야 한다."
관세 부과로 미국 경제가 흔들릴 것이란 지적이 많은데.
“미국은 극단적인 불확실성에 놓였다. 소비심리가 위축하고, 기업은 제대로된 의사 결정이 어렵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바이든 정부가 과도한 정부 지출로 망친 경제를 ‘디톡스(해독)’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관세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래서 관세를 높이는 보호주의 기조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보호주의는 당분간 ‘뉴노멀’로 작용할 것이다. 2017년 이후 추이를 보면 자유무역은 밀려나고,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강화됐다. 트럼프 2기에선 이 경향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미국의 정치 구도도 바뀌었다. 제조업 공동화를 겪는 중서부 7개 주에서 사실상 대통령을 뽑는다. 제조업의 부흥이 공화·민주 양당의 공통된 구호인 이유다. 중국이 고속 성장하면서 미국에 대적할 만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그동안 공화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해 왔지만, 국가 자본주의 중국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정부가 나서 보호장벽을 세우고 자국 제조업을 육성하는 미국의 기조는 3~4년 만에 끝날 유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가 개최한 '한미 무역관계와 2024 미 대선' 학술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 난국(難局)을 벗어날 방법이 있나.
“일본과 전략적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과 오랜 경쟁 관계지만, 비슷한 수출 구조를 갖고 있어 이익이 일치한다. 일본은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가 680억 달러, 한국은 660억 달러다. 최근 양국이 미국에 제시하는 협상 카드는 ▶조선업 협력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개발 참여 ▶자동차·철강 등 제조업 투자 등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이번 상호관세도 한국 26%, 일본 24%로 비슷하다. 한일이 손잡으면 협상력은 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한일이 공동 투자하면 경제적 부담과 리스크가 줄어든다.”
한국의 정치적 안정이 필요한데.
“트럼프 1기 때는 소신에 따라 자기 목소리를 내는 각료가 있었지만, 지금은 트럼프가 궁극의 결정자가 됐다. 정상 외교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다. 한국의 정치 혼란이 안정되려면 최소 2~3개월이 걸린다고 볼 때 경쟁국보다 협상이 늦어질 수 있다. 정치적 전환기에 미국이 한국과 협상에 전력으로 나서지 않을 우려도 있다. 정부는 협상 지연 가능성을 염두한 전략을 짜야 한다.”
한국 경제가 당분간 휘청일 수 있다.
“당장 수출 감소는 불가피한 조정비용으로 여겨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주력 산업의 경우 이미 경쟁국의 거센 압박을 받고 있다.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AI(인공지능) 등에서는 존재감이 떨어진다. 노동 시장의 경직성, 복잡한 규제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도 손질이 필요하다. 새로운 체제에서 한국의 새로운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