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에서 우주공학자 된 공근식 박사 인터뷰

마흔까지 수박 농사 짓다가 러시아 유학 10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인 러시아 우주항공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맏은 공근식 박사를 지난 18일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만났다. 장진영 기자
무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
'무엇인가' 시리즈로 이름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에세이집 『공부란 무엇인가』(2020)에서 내린 공부 정의다. 이를 적용하자면, 악명 높은 '7세 고시'나 '의대 쏠림'으로 유명한 한국은 무엇을 왜 공부하는지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육열이 높다기보다 오히려 교육에 냉담한 사회다. 김 교수가 "(입시·취업을 위한) 수단화된 공부 말고 특별한 목적 없이 공부하는 게 진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배경이다. 공부 싫어 자퇴, 유학 중엔 퇴학
노벨상 배출 명문서 수석 졸업
인생 반전엔 "더, 더, 더" 정신
무작정 "가르쳐달라" 매달렸다
좋아서 한 공부가 주는 울림
노벨상 배출 명문서 수석 졸업
인생 반전엔 "더, 더, 더" 정신
무작정 "가르쳐달라" 매달렸다
좋아서 한 공부가 주는 울림
그런데 여기, 한국 사회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들이 그러하듯 공부를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더 알고 싶고, 배우는 게 재밌어서"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 두 동생이 대학 가고 취업하는 동안 본인은 공부가 싫어 고교 중퇴 후 마흔 살 되도록 고향에서 수박 농사짓던 공근식(55) 박사 얘기다. 너무 드문 사례라 TV 뉴스와 예능 프로그램까지 그를 다뤘다.
![MIPT 학회지에 실린 공근식 박사 스토리. 수박 농사꾼 이력은 러시아에서도 화제였다. 왼쪽 페이지는 1992년 '농진종묘'라는 잡지에 소개된 그의 모습. [사진 공근식]](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23/a3c664ea-18a2-4c29-99e9-2b08e8c3513d.jpg)
MIPT 학회지에 실린 공근식 박사 스토리. 수박 농사꾼 이력은 러시아에서도 화제였다. 왼쪽 페이지는 1992년 '농진종묘'라는 잡지에 소개된 그의 모습. [사진 공근식]
공 박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난 2022년 귀국한 후 이번 학기부터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박사 후 과정과 양자역학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성대 국제관에서 '무용한' 공부에 인생을 건 사연을 듣고, 그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두 번의 자퇴
다행히 재능이 있었다. 초강리 수박이 원체 당도 높기로 유명했지만 내가 키운 수박은 더 크고 달아 더 비싸게 팔았다. 농업기술센터의 농민 후계자로 뽑힐 만큼 성실하기도 했다. 4500평(1만5000㎡) 하우스에서 매년 12월 중순 수박 모종을 키워 이듬해 6월 시장에 내보내면, 곧바로 알타리무를 파종해 두 번 더 수확했다. 이렇게 1년에 세 번 농사지어 우리 식구 먹고살고 동생들 공부할 돈을 벌었다.
![지난 1999년 농우종묘 수박품평회에 참여한 부모님. 왼쪽 파란색 줄무늬 상의를 입은 게 아버지이고, 바로 옆이 어머니. 맨 왼쪽은 할머니다. [사진 공근식]](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23/8f105774-bccc-4df0-8566-55e235a793fe.jpg)
지난 1999년 농우종묘 수박품평회에 참여한 부모님. 왼쪽 파란색 줄무늬 상의를 입은 게 아버지이고, 바로 옆이 어머니. 맨 왼쪽은 할머니다. [사진 공근식]
인복을 타고났는지 여기서도 여러 은인을 만났다. 전산전자물리학과 박종대 교수, 화학과 교환 교수로 온 고려인 김용하 교수, MIPT에서 온 러시아 박사, 그리고 충남대 물리학과 박병윤 교수, 그리고 함께 강의 들으며 아무 대가없이 나를 도와준 학생들이다.
![MIPT를 수석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 전인 지난 2016년 한국에 와서 배재대 재학 시절 은사이자 은인인 박종대 교수를 만났다. [사진 배재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23/742511bb-ff9e-43ff-b6e8-8247bfd87190.jpg)
MIPT를 수석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 전인 지난 2016년 한국에 와서 배재대 재학 시절 은사이자 은인인 박종대 교수를 만났다. [사진 배재대]
3학년부터 수업이 물리 아닌 컴퓨터 위주길래 휴학하고 카이스트와 충남대 청강에 집중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번엔 공부가 좋아서 한 중퇴였다.
한 번의 퇴학
위대한 항공학자 니콜라이 주코프스키(1847~1921) 이름을 딴 모스크바 인근 주코프스키 시에 위치한 MIPT는 안드레 가임 등 노벨상 수상자 10여 명과 미르·국제우주정거장(ISS)에 769일 체류했던 알렉산드르 칼레리 등 숱한 우주비행사를 배출한 항공우주 인재 양성의 산실이다. 수학·물리·화학 고교 내신으로 신입생을 뽑는데 다행히 이 과목 검정고시 성적이 좋았다. 마흔둘이던 2012년 일단 예비학교에서 러시아어를 배운 후 물리공학과에 입학했다. 아무리 예비학교를 통과했어도 수업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칠판 위 수식 보고 어찌어찌 공부했지만 컴퓨터 없던 컴맹이라 인터넷 공지를 놓치는 통에 시험을 아예 못 보고 1학기 만에 퇴학당했다.
유학 당시 전 재산이 5000만원쯤. 아무리 연 500만원 정도로 학비가 싸다지만 부모 봉양은커녕 집 재산 까먹으며 유학 가는 나를 동네 어른들은 무책임하고 형편없다고 욕했을 거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응원해줬는데, 이런 사실을 차마 털어놓을 수 없었다. 러시아어를 좀 더 배워 곧 돌아갈 거라고 거짓말했다. 속으론 "농사나 짓자" 했다.

퇴학당했던 공근식에게 재입학 기회를 준 석학 세르게이 파블로비츠 알릴루예프 MIPT 명예교수. 이 교수 양자역학 수업을 청강한 게 인연이 됐다.
1, 2학년은 여전히 언어가 문제였지만 성적은 꽤 좋았다. 오전 9시 시작하면 밤 9~10시까지 수업하고, 금요일에 내준 과제 하느라 주말 내내 공부했다. 어린 러시아 천재들도 버거운 수업이라 더 이 악물고 했다. 다행히 귀가 트인 3학년부터 전 과목 A 플러스 받아 외국 유학생으로는 드물게 국가장학금에다 생활비까지 넉넉히 받았고, 수석 졸업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쓸모없고 쓸모있는 박사
수박 농사짓다 뒤늦게 우주공학 공부하는 내 사연은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화제였다. MIPT 학술지와 현지 언론에 소개된 덕분인지 학교 측은 한국 행 비행기 표까지 사주며 각별히 챙겼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가령 박사 과정 때 주 1회 열리는 세미나에서 조금이라도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 참석이 막혔다. 심지어 지도 교수 논문도 공유 못 받기 일쑤였다. 외부 발표는 검열을 거쳤다. 단기 프로젝트로 온 MIT 박사 과정 학생과 기숙사 한방을 쓴 적 있는데, 미국 역시 극초음속 분야는 외국 유학생에게 잘 개방하지 않는다고 했다. 상관없었다. 러시아에 남으면 그만이었다.
![러시아연방 과학학회 참석 후 지도교수 이반 블라디미로비치 예고로프(오른쪽)와 나를 도왔던 안드레이 노비코프와 찍은 사진.공부만 하느라 러시아에서 찍은 사진은 5장이 전부다. [사진 공근식]](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23/0f6f82ce-a405-4550-ab81-d34689e208c0.jpg)
러시아연방 과학학회 참석 후 지도교수 이반 블라디미로비치 예고로프(오른쪽)와 나를 도왔던 안드레이 노비코프와 찍은 사진.공부만 하느라 러시아에서 찍은 사진은 5장이 전부다. [사진 공근식]
지금껏 요양병원 계신 아버지 돌보며 고향 집에서 혼자 논문 쓰고 있다. 발사체 시뮬레이션을 위해 컴퓨터를 1년 6개월 동안 한 번도 끄지 않고 계산 프로그램을 돌려 첫 논문은 완성했고, 두 번째 논문 작업 중이다. 야학부터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게 재밌어 공부했다. 그런데 생애 처음으로, 외국 유명 학회지 등재라는 특정 목표가 생겼다. 논문을 계기로 러시아에서 멈춘 공부를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어가길 희망해서다.
성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김장현 교수 제안으로 하는 시간강사가 지금 한국에서 내 지식을 활용하는 유일한 통로다. 한국우주항공청(KASA)의 화성 탐사선 계획이 20년 뒤인 2045년에나 잡혀 있는 만큼, 내 지식은 당장 쓸모가 없다. 또 곧 정년퇴직할 나이라는 현실의 벽 탓인지 관련 연구 기관 취업도 쉽지 않다. 한마디로 연구는 너무 앞섰고, 나이는 너무 먹었다. 괜찮다. 당장 써먹을 수 없는 공부면 어떤가. 공부하다 보면 또 뭔가 일어나겠지.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