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영 배우는 '파과'를 통해 전설이라 불리는 60대 킬러 조각을 연기했다. 민규동 감독을 통해 소설을 먼저 읽어봤다는 그는 "'조각'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 전했다. 사진 NEW, 수필름
구병모 작가의 소설『파과』가 지난해 뮤지컬에 이어 올해 영화로 돌아왔다.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허스토리’(2018) 등을 연출한 민규동(55)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파과’는 범죄자 등을 청부살인하는 신성방역의 대모인 킬러 조각(이혜영)과 신입 킬러 투우(김성철)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 스릴러 영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직접 각색을 한 민 감독은 원작에서 조각의 서사를 덜어내는 대신 조각과 투우의 관계를 살렸다. 이혜영의 조각은 날카로움을 잃지 않은, 소설 속 노련한 킬러의 모습 그대로다.

"현장에서 감각적으로 연기를 해 왔다"는 이혜영 배우는 민규동 감독을 만나 처음으로 꼼꼼한 연출 아래 촬영을 이어갔다. 그는 "처음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결과물을 보니 '역시 감독님은 계획이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 NEW, 수필름
류는 신성방역을 이끌던 원조 ‘레전드’ 킬러다. 조각이 손톱(신시아)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함께했다. 조각이 자신의 ‘쓸모’를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사람이기도 하다. 조각이 류를 떠올릴 때의 마음을, 이혜영 배우는 ‘수수께끼 같은 힘’이라고 표현한다. “그 힘이 부러웠죠. 편하게 배우(생활을) 할지, 도전을 할지 고민했는데 도전을 선택했어요.”

조각은 '쓸모'를 찾아가는 사람이다. 영화에선 '방역'이라고 불리는 청부살인을 하는 내내 버려진 그를 거둔 류를 상기한다. 사진 NEW, 수필름
조각의 노련함과 노쇠함을 표현해야 했다.
“나이가 있다 보니 노쇠함은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부상 방지를 위해 액션 연습을 한 정도다. 무술감독은 조각을 성별을 뛰어넘는 존재로 여기게 해줬다. 무술감독과 함께 조각이 서 있는 모습과 표정을 만들어갔다. 감정을 유지하며 기술을 발휘하는 것. 무엇보다 차가운 분위기를 매 순간 유지해야 했다.”
정형화된 킬러의 모습과는 다른 것 같다.
“처음에 내 목소리가 우아하게만 들려 쉰 소리, 거친 소리 모두 내어봤다. (시도가) 끝나갈 때쯤 민 감독이 ‘배우는 잘못이 없다’고 그러더라. 어느 그릇(작품)에 담기느냐에 따라 어색할 수도 있고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고 말해줬다. 조각의 직업은 킬러지만 거칠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내 목소리로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액션 연기를 하며 부상도 입었다고.
“액션 찍는 첫날부터 부상을 입었다. 이태원 클럽서 싱크대에 부딪치는 장면이 있다. 그때 갈비뼈를 다쳤다. 맞는 장면이 더 힘들더라. 시간이 없어 촬영을 강행하다 보니 갈비뼈가 총 세 개나 부러졌다. 촬영 끝까지 회복이 안 되어 ‘앞으로 배우 못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지금은 괜찮다.”
마지막 씬을 찍고 주저앉았다고. 어떤 감정이었나?
"오로지 최선을 다해, 무사히 끝내야 한단 생각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어느새 촬영이 끝나있더라. 새로운 역할과 연출방식에 적응하느라 '파과'가 끝나면 어디로 가야 하지 고민할 정도로 깜깜했었다. 여기서 살아남으면 ‘쓸모있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각(왼쪽)과 투우는 '방역' 방식에 있어서 계속 대립한다. 연륜이 있는 절제된 '방역'을 하는 조각은 신선하고 잔인한 '방역'을 하는 투우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각이 보란 듯, 그와는 철저히 다른 '방역'을 하는 투우에겐 베일에 감춰진 사연이 있다. 사진 NEW, 수필름
상대 역 김성철 배우와의 합은 어땠나.
“김성철 배우는 지금 나이에만 낼 수 있는 저돌적이고 청순한 에너지가 있다. 조각과 투우의 관계는 그가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늘 상대역이 없는 역할을 맡아왔는데, 이번에 호강했다.”
국립극장에서 8일 개막하는 ‘헤다 가블러’ 재연에도 '헤다'로 참여 예정이다.
“연극은 끝나는 날까지도 완벽하지 않다. 원래는 무대를 훨씬 좋아하고 잘 맞는다. 배우라는 게 때가 있는 건지, 헤다라는 인물도 초연 때보다 더 이해가 잘 간다.”
앞으로 어떤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나.
“나는 이제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보는 사람들에겐 고정된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이번 ‘파과’로 이미지를 깰 수 있게 된듯해 다행이다. 이번에 민 감독과 합을 맞춘 것처럼, 다양한 감독을 통해 많은 그릇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