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34%가 한푼 안 내는데 근로소득세 감면 확대?[대선 공약 검증]

김문수, 한동훈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후보자 선출을 위한 3차 경선 진출자 발표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중앙포토

김문수, 한동훈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후보자 선출을 위한 3차 경선 진출자 발표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중앙포토

 
대선 주자들이 일제히 중산층의 근로소득세 부담을 줄이겠다고 나섰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지난달 30일 "중산층의 실질적 세금 부담을 줄이겠다"며 물가연동제 도입과 기본공제액 확대를 공약했다. 물가연동제는 소득세 과세표준과 공제액을 물가 상승에 맞춰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한동훈 후보는 "부양가족 기본공제와 자녀 공제를 확대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지난달 30일 직장인 간담회에서 "명목상 임금이 오르면 과세표준이 오르고, 그러면 세율이 올라서 실제 월급은 안 오르는데 세금은 늘어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 기본공제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뉴스1

 
후보들이 내세우는 '직장인 감세'의 근거는 늘어나는 근로소득세 부담이다. 김 후보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하는 과표와 공제액으로 지난해 국세 대비 근로소득세 비중이 18%를 넘을 정도로 직장인의 삶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맞는 말이다. 소득세 과표구간은 2008년 이후 큰 틀이 달라지지 않았다. 8800만원 이하는 6~24%이고, 초과분은 35~45%로 껑충 뛴다.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이 2008년 2453만원에서 지난해 4996만원으로 뛰었는데도 과표구간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8800만원 초과 근로자가 늘면서 실질적인 증세가 이뤄진 것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달 29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근소세는 2005년 10조4000억원 지난해 61조원으로 늘었다. 최근 10년간 해마다 10% 증가했다. 국세 대비 근소세 비중 역시 2008년 9.3%에서 지난해 18.1%로 급증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소득세 과표구간을 장기간 고정하면 누진세 구조 때문에 세 부담이 빠르게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과표구간을 물가만큼 상향 조정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미국·영국·프랑스 등 22개국이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후보들은 연동제를 시행하는 나라 대부분이 우리보다 훨씬 무거운 소득세를 매기고 있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특히 근소세는 실효세율이 많이 낮다. 평균임금의 67%를 버는 저소득층의 근소세가 3.2%로, OECD 평균(10.7%)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평균보다 67% 더 버는 고소득층은 11.8%를 내지만 이 역시 OECD 평균(20.6%)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소득 5000만원 이하 구간의 세율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에 각종 공제를 적용하면 전체 근로자의 3분의 1(33.6%)인 690만명이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

 면세자가 영국(5.9%), 캐나다(10.1%), 호주(12.6%), 일본(15.1%)보다 훨씬 많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 등에 대응하려면 추가 재정 확보가 필요하다"며 "근로소득에서도 세수를 늘려 복지 수요와 사회 안전망 확대에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이런 상황에서 연동제와 공제액 확대를 시행하면 소득세 총액이 줄어 세수에 악영향을 미친다. 2023, 2024년 연속 세수 결손이 생겼다. 또 일부 고소득 근로자들이 소득세의 대부분을 내는 현상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2023년 열 명 중 한 명 꼴인 총급여 8000만원 초과 근로자(전체의 12.1%)가 전체 소득의 3분의 1(35.7%)을 가져가면서 소득세의 4분의 3(76.4%)을 냈다. 

과표구간을 물가에 연동해서 올리고 기본공제를 확대하면 면세 근로자도 늘어난다. 이는 국민개세주의(모든 국민이 적은 액수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에도 어긋난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영국은 과세자 비율이 90%가 넘고, 미국 등 주요국도 80%가 넘는다"며 "우리나라는 세금의 누진도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국민개세주의에서 너무 멀어진 성황"이라고 지적했다.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제22대 국회 조세정책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세의 절반 가까이(42%)를 낸다"며 "현행 면세점 수준을 유지해 2034년까지 면세자 비중을 20%대로 낮추고, 실효성 낮은 복잡한 공제제도를 통폐합해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창우 경제선임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