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조종 AI' 만든 네이선 마이클
귀관이 몰았던 전투기는 조만간 조종사가 필요 없어질 거야. 자네가 시간을 좀 벌긴 했지만, 다가오는 미래엔 자네(전투기 조종사)들 자리는 없어.
2022년 개봉한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 주인공 매버릭(톰 크루즈)이 신형 극초음속기 ‘다크스타’의 시험 비행을 고집하자 ‘무인 전투기 예찬론자’인 상관 케인 제독에게 꾸중을 듣는다.

네이선 마이클 미국 실드 AI의 CTO. 전형적인 이공계 엔지니어와 같은 인상이었다. 장진영 기자
케인 제독의 한소리에 매버릭은 “그러겠죠. 그러나 오늘은 아닙니다”라고 혼잣말로 읊조린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다가오는 미래’를 매버릭의 예상보다 더 빨리 볼 수 있을 듯하다.

지난해 5월 2일 X-62A 비스타에 탄 프랭크 캔덜 전 미 공군장관. 두 손을 조종간에서 뗐다. 미 공군 페이스북 계정@USairforce
지난해 5월 2일(현지시간) 크랭크 켄달 당시 미국 공군장관이 X-62A 비스타를 타고 1시간 넘게 날았다. 켄달 전 장관은 비행 내내 두 손을 조종간에서 완전히 뗐다. 그는 “조종간의 스위치를 눌러 자율 비행을 시작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F-16 전투기를 개조한 X-62A 비스타엔 실드(Shield) AI의 AI 소프트웨어가 탑재됐다. 실드 AI는 미국에서 국방 AI 스타트업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실드 AI의 최고기술경영자(CTO) 네이선 마이클을 만났다.
‘탑건: 매버릭’에서 전투기 조종사가 필요 없어진다는 미래는 언제쯤인가.
기술적 역량으론 이미 가까이 있다. 우리는 AI를 전투기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가졌다. 그러나 기술을 시연하는 것과, 이를 실전에 배치하는 것은 다르다. 앞으로 24개월 안에 본격적으로 관련 기술이 평가받을 것이다. 그리고 3~4년 안에 실제 임무에 투입되는 사례도 나타날 것이다. 인간 조종사는 앞으로 몇 년간은 볼 수 있다. 대신 유인 전투기를 타며 무인 시스템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 조종사가 탑승하는 플랫폼(전투기를 포함한 항공기)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X-62A는 전투기 조종사가 모는 F-16과 모의 근접 공중전(dogfight)을 벌였다. 미 공군은 결과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혁신(breakthrough)”으로 평가했다.

네이선 마이클 미국 실드 AI의 CTO. 전형적인 이공계 엔지니어와 같은 인상이었다. 장진영 기자
실드 AI는 ‘회복력 있는 지능(Resilient Intelligence)’을 지향한다. 무슨 의미인가.
‘회복력’의 의미는 AI가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을 내리며, 그 결정을 바탕으로 점점 더 많은 것을 학습하며, 환경과 작전 조건의 변화에 따라 적응하고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AI를 넘어서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고 성능을 향상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려고 한다. 지능에 회복력을 부여하는 핵심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이후 행동을 어떻게 할지 판단하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내재화하는 데 있다.
AI는 실수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나는 AI가 실수하고, 실제로 지금도 실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실수한다. 하지만 우리는 실수로부터 배우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그에 따라 행동 방식을 바꾼다. 이 때문에 인간은 회복력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기능이 AI 기반 자율 시스템에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AI도 학습을 통해 점점 더 똑똑해질 수 있다.
실드 AI의 핵심 기술인 하이브마인드(Hivemind)는 AI가 전장을 인지하고 판단해 인간의 개입 없이 작전을 수행하도록 만든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주목받은 드론(소형 무인기)은 사람이 후방에서 움직이거나 미리 입력한 GPS 좌표로 날아간다. 이 때문에 강력한 전파 방해를 쏴 드론을 무력화할 수 있다. 실드 AI의 하이브마인드를 내장한 드론인 V-BAT은 전파 방해를 받으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뒤 혼자서 목표까지 경로를 찾는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실드 AI의 하이브마인드는 스스로 사고할 수 있다. 외부 정보 수신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율적으로 작동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다. GPS나 외부 통신이 끊기고 완전히 낯선 환경에서도 현재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활용해 다음 단계를 찾아 나간다. 사람이 시각과 상황 인지로 목표를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그러다 GPS나 외부 통신이 다시 연결되면 즉시 이를 반영한다.
하이브마인드는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가 함께 팀을 이뤄 작전을 수행하는 스워밍(Swarming)까지 가능하다. 마이클은 “V-BAT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실전을 치르면서 정찰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말했다. 실드 AI가 ‘AI 전쟁’의 서막을 열고 있는 셈이다. 실드 AI는 이를 “군인과 민간인을 AI와 자율 시스템으로 보호한다”는 사명(社命)으로 표현한다.
당신은 ‘자동차에 시동을 걸면 바로 운전할 수 있듯이 AI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슨 뜻인가.
핵심은 AI 기반 자율 시스템을 자동차처럼 신뢰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AI는 실수하고, 자율 시스템 역시 실수한다. AI도 다른 제조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품질 관리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사람들은 AI의 발전에 놀라워하며, 동시에 두려워한다.
AI 기술의 발전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 보고 있는 건 단지 새로운 기술의 도입 과정이라고. 새로운 기술은 늘 ‘신기함’의 시기가 있다. 이후 엄격함과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해지는 시점이 온다. 그래야 새로운 기술을 신뢰하는 기술로 바꿀 수 있다. 과거 많은 기술이 그랬다. AI에서도 자동차와 같은 엄격함과 체계를 적용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 이게 과제다. AI는 단순히 ‘실수해도 괜찮은’ 시스템이 아니다. AI는 이미 정해진 범위와 가이드라인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AI는 자동차처럼 신뢰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어야 한다.
AI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처음 등장했을 때 지금과 같은 도로 교통 규칙이 없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동차를 사회적으로 수용하고, 관련 규칙과 제도를 마련했다. 처음부터 엄격한 규제를 도입했다면 혁신을 빠르게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적절한 시점에 도달해 규제와 기준을 도입해야만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금 AI는 자동차 초기와 같은 단계다.

네이선 마이클 미국 실드 AI의 CTO. 전형적인 이공계 엔지니어와 같은 인상이었다. 장진영 기자
‘터미네이터’와 같은 SF 영화는 AI를 무서운 존재로 그렸다.
강력한 신기술이 나오면 우리는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인류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 우리는 AI를 개발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AI의 신뢰성을 검증할 수 있는 생태계를 함께 만들려고도 노력하고 있다.
하이브마인드를 군사용이 아닌 민간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나.
처음 하이브마인드를 설계했을 때 국방에만 초점을 맞췄다. 국방에서 AI의 수요가 시급했고, 빠르게 기여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AI와 자율 시스템은 국방을 넘어 도심항공(UAM), 로보택시, 재난 구조, 물류 드론, 인프라 점검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한국의 AI 기술력은. 삼성전자는 TV와 스마트폰은 잘 만들지만, AI에선 아직 성과를 못 내고 있다.
한국은 기술 강국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한국엔 첨단 기술 기업들이 많고, 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대학과 연구기관들도 많다. AI 분야에서도 기초 역량을 구축했고, 이를 활용하려는 스타트업들이 활발히 생겨나고 있다. 한국의 인재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이를 시장에서 실용화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내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이 두 번 째 방한이다.
실드 AI는 아프가니스탄 참전 경력의 전직 미 해군 네이비실 브랜든 청이 동생 라이언 청과 손잡고 2015년 창업했다. 미국 투자은행 해리스 윌리엄스가 2022년 6대 방산 유니콘인 ‘SHARPE(실드 AI, 호크아이 360, 안두릴, 리벨리언 디펜스, 팰런티어, 에피러스)’의 ‘S’로 선정했다.

지난해 6월 20일 해군의 상륙함 독도함에서 실드 AI의 드론 V-BAT 운용을 시험했다. V-BAT은 수직 이착륙과 완전 자율비행이 가능하다. 실드 AI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차세대 공중전투 무인기 개발과 관련, 실드 AI의 고객이다. 한화자산운용은 지난달 실드 AI에 투자했다. 지난해 6월 20일 해군은 실드 AI의 V-BAT을 상륙함인 독도함에서 시험적으로 운용해 봤다.
안경을 쓴 마이클은 전형적 ‘이공계 외모’였다. 무시무시한 AI 무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는 AI의 무기화에 대한 윤리적 문제나 중국 AI 기술력의 평가에 대한 질문에 “민감하다”며 답을 피했다.
앞으로 전쟁 승리의 방정식에서 AI가 중요한 변수인가.
그렇다. AI는 강력한 억제를 제공한다. 적들이 우리가 (AI로) 즉각적이고 정밀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걸 안다면 그들의 전략적 계산이 달라질 것이다. 미래는 위협(적)보다 더 똑똑하고 더 빠른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AI가 그 해답이다.
☞네이선 마이클=미국 카네기 멜런 대학 로봇 연구소 교수로 AI와 자율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미 국방부·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항공우주국(NASA) 등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2년 일본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에 투입된 로봇은 그가 참가한 개발팀의 작품이었다. 실드 AI의 자문에 응하다가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실제 사용되는 걸 보고 싶어” 2017년 회사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