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깐쇼새우. 최희경의 중화가정요리
평범한 새우볶음 요리가 왜 이렇게 널리 여러 형태로 퍼졌을까? 물론 맛있으니까, 그래서 지역별로 현지의 구미에 맞춰 여러 버전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색다른 배경도 엿볼 수 있다. 깐쇼새우에 녹아있는 중국 현대사와 음식문화사다.
중국에서 깐쇼새우, 중국말로 깐사오밍샤(乾燒明蝦)는 사천식, 상해식이 널리 알려져 있다. 사천식 깐쇼새우는 특유의 맵고(辣) 얼얼한(麻) 맛이 특징이다. 반면 상해식은 매운맛을 즐기지 않는 현지 입맛을 감안해 훨씬 덜 맵고 거의 얼얼하지 않은 맛(輕麻微辣)이 나도록 요리한다.
중국 밖 다른 나라에도 깐쇼새우는 널리 퍼져있다. 일단 매콤하지만 얼얼하지 않은 한국식 깐쇼새우가 있고 일본식 깐쇼새우도 있다. 매운 맛에 약한 일본인만큼 토마토케첩으로 조리하는데 일본에서는 칠리 새우라는 뜻의 에비 치리(エビチリ)라고 한다. 일본 화교 요리사가 상해의 깐사오밍샤를 토대로 만들어 유행시켰다고 한다. 우리 깐쇼새우는 중국에서 직접 건너온 것이 아니라 일본을 거쳐 전해지면서 매콤한 맛이 더해진 것으로 본다.
싱가포르에도 깐쇼개우가 있다. 칠리 쉬림프(chilly shrimp)라고 한다. 광동식 깐샤오밍샤가 바탕이다. 미국 등에 퍼진 칠리 쉬림프는 대부분 여기서 파생된 것으로 광동 출신 화교의 고달픈 이민사가 반영돼 있다.
지구촌 곳곳에 퍼진 깐쇼새우, 그 뿌리와 기원은 어떻게 될까?

깐사오밍샤(乾燒明蝦). 바이두
먼저 사천성이나 호남성 깐사오밍샤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서민들의 평범한 음식에 지나지 않았다.
별다른 소스 없이 그저 고추 혹은 두반장으로 볶았다는 깐사오(乾燒)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사천성과 호남성은 양자강이 본격적으로 큰 강줄기를 형성해 흐르고 그로 인해 다양한 호수가 발달한 지역이다. 하지만 바다는 없는 내륙이다. 바꿔 말해 우리가 대하(大蝦)라고 부르는 밍샤(明蝦)는 없는 곳이다. 대신 민물 새우가 풍부한 지방이다. 그런 만큼 사천과 호남에서는 껍질 깐 새우를 고추 혹은 두반장으로 맵게 볶은 간사오샤런(乾燒蝦仁)을 먹었다.
이 음식이 20세기 초, 바닷가 도시인 상해로 흘러 들어오면서 민물 새우가 중국어로 밍샤(明蝦)라고 부르는 대하로 대체되고 매운 맛의 고추와 두반장 대신 칠리소스 혹은 토마토 케첩 등으로 조리하면서 현재의 상해식 깐사오밍샤가 됐다는 것인데 단지 재료와 맛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양주(揚州). 바이두
정리하면 맵고 얼얼한 사천과 호남 음식이 상해에 전해지면서 매운 맛은 살짝만 남았고 여기에 양주의 회양요리법이 덧입혀지면서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요리로 탈바뀸했다. 이렇게 변형된 요리를 상해식 사천요리(海派川菜)라고 한다.
그런데 왜 상해에, 사천음식이 널리 퍼진 것일까? 중독성이 있는 자극적인 맛을 포함해 다양한 이유를 꼽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중국 근현대사와 관련있다. 사천요리가 상해에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말부터라고 한다. 그러다 중일전쟁과 국공내전 등으로 인해 음식교류가 본격화된다.
1926년 이후 국민당군과 공산당군의 내전이 본격화되면서 상해를 비롯한 화동 출신 병사들이 사천과 호남성에서의 전투에 동원된다. 또 국민당 정부가 일본군에 쫓겨 중경으로 피난가면서 상해 출신 지식인과 부유층도 사천으로 따라갔다. 전쟁으로 인해 사천성 등지로 내몰렸던 이들이 종전 후 돌아오면서 상해에 사천음식이 퍼졌고 상해식 사천요리가 유행했다. 깐쇼새우, 깐사오밍샤도 그런 음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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