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등 동아시아, 유럽보다 AB형 많은데…이 혈액형 극히 적다

한 국군 장병이 대한적십자사 헌혈버스에 누워 헌혈에 동참하고 있다. 뉴스1

한 국군 장병이 대한적십자사 헌혈버스에 누워 헌혈에 동참하고 있다. 뉴스1

'AB형은 상대적으로 많지만, RhD 음성은 극히 적음'. 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의 혈액형 분포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조덕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윤세효 하버드의대 병리과 전공의·임하진 전남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주요 지역별 혈액형 특성을 비교 분석했다. 연구 결과, 한국·일본·중국·대만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과 비교해 AB형 비율이 높지만, RhD 음성은 매우 낮게 나왔다.

동아시아의 AB형 분포는 5~12%로 남아시아(6~16%)보다 다소 낮았지만, 중동(1~9%)·아프리카(3~6%)보다는 확연히 높았다. 반면 RhD 음성은 0.1~1%로 유럽(11~19%)과 비교해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동아시아의 RhD 양성 비율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O형은 중동·아프리카, A형은 유럽, B형은 아시아권에서 많은 편이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동아시아 고유의 혈액형 타입도 두드러졌다. 한국인과 일본인에게선 'Cis-AB형'이 유럽·중동·아프리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Cis-AB형은 ABO식 혈액형의 돌연변이로, 하나의 염색체에 A형과 B형 인자를 모두 갖는 희귀 혈액형이다. 또한 소량의 RhD 항원을 가진 '아시안-타입 델'도 서양인에게 존재하지 않고 동양인에게만 나타나는 양상이다.

연구진 "수혈 체계에 인종 특성 등 반영해야" 

연구팀은 이러한 유전적·인종적 특성을 고려해 국가별로 다른 수혈 체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예를 들어 Cis-AB형은 서양에서 개발된 자동화 장비 일부에서 AB형으로 잘못 진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추가 검사 없이 해당 혈액형 환자에게 AB형 혈액 적혈구를 수혈하면 용혈(적혈구 파괴)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시안-타입 델도 비슷하다. RHD 유전자 검사를 거치지 않으면 단순히 RhD 음성으로 판정될 수 있다. 이들의 혈액을 RhD 음성 환자에게 그대로 수혈하면 부작용이 생기는 식이다. 이 때문에 RhD 음성으로 분류된 헌혈자에게 RHD 유전자 검사가 실시돼야 안전한 수혈이 가능해진다.

조덕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사진 삼성서울병원

조덕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사진 삼성서울병원

혈액형 특성은 혈액 확보와도 직결된다. 초응급 상황에서 별도 혈액형 검사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적혈구인 'O형 RhD 음성 혈액'은 유럽에서 확보가 쉬운 편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RhD 음성 환자가 적기 때문에 공급 부족이 필연적이다. 그래서 'O형 RhD 양성 혈액'을 불가피하게 써야 한다. 연구팀은 "RhD 음성 혈액을 확보하기 위한 헌혈자 등록 프로그램이 있지만,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이 닥치면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수혈의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트랜스퓨전' 최근호에 실렸다. 조덕 교수는 "기존의 서구 중심 수혈 기준이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 연구"라고 밝혔다. 임하진 교수는 "동아시아인 특성에 맞는 혈액형 유전자 검사법이 필요하다. 희귀 혈액형 보유자를 위해 헌혈·수혈자 매칭 시스템 개선 등도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