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한국 남자 배구의 전성기를 이끈 장윤창 경기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30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
30일 지병으로 별세한 '돌고래 스파이커' 장윤창의 1990년 경기 장면. 연합뉴스
장 교수는 한국 남자 배구 역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다. 왼손 아포짓 공격수였던 그는 인창고 2학년이던 1978년 역대 최연소(17세)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뒤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강만수, 김호철 등과 함께 한국의 사상 첫 4강 진출에 앞장섰다.
이어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수확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5승 신화(최종 성적 5위)도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30일 지병으로 별세한 '돌고래 스파이커' 장윤창의 1987년 경기 장면. 연합뉴스
장 교수는 1983년 '조직력 배구'의 대명사였던 고려증권의 창단 멤버로 입단해 실업 리그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활처럼 휘어지는 유연한 허리로 타점 높은 공격을 해내 '돌고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남자 배구선수 최초로 폭발적인 '스카이 서브'를 선보이면서 현대자동차서비스와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프로 배구 출범의 발판이 된 대통령배 원년 대회(1984년) 때 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하며 고려증권을 초대 챔피언에 올려 놓았다. 고려증권은 그의 활약을 앞세워 역대 최다인 6회 우승을 차지했다.
30일 지병으로 별세한 장윤창 전 경기대 교수. 연합뉴스
장 교수는 현역 은퇴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체육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모교인 경기대에서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일했다. 또 대한배구협회 강화이사를 거쳐 2011년 출범한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과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을 역임하는 등 행정가로도 역량을 발휘했다.
장 교수는 평소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몸 관리로 유명했지만, 끝내 병마를 피해가지 못했다. 측근에 따르면 장 교수는 지난해 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자택에서 투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6월 1일 오전 5시 30분이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