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살해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흰색 실루엣 벽화에 놓인 꽃들. EPA=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 14세 소녀가 19세 전 남자친구에게 무참하게 살해돼 여성에 대한 폭력과 페미사이드(여성 살해) 문제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30일(현지시간) 현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에 따르면 마르티나 카르보나로는 지난 28일 오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외곽 도시인 아프라골라의 폐건물 옷장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19세 남성 알레시오 투치를 살인과 시신 유기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투치는 경찰 조사에서 "돌로 내리쳤다"며 "다시 만나주지 않으려고 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투치의 범행은 그가 카르보나로와 함께 폐건물에 들어갔다가 혼자 나오는 장면이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히면서 덜미가 잡혔다. 그는 지난 26일 범행을 저지른 뒤 집에 가서 샤워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친구들과 외출했다.
카르보나로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가족과 친지들은 실종신고를 했다. 투치는 수색에도 참여하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사이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카르보나로와 채팅 기록을 삭제하는 등 범행 은폐를 시도했다.
이 사건은 이탈리아 사회 전반에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29일 "지난 몇 년 동안 사회·문화적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며 "모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1야당인 민주당(PD)의 엘리 슐라인 대표도 "젠더 폭력 문제 앞에서는 정쟁을 멈추고 나라 전체가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에선 페미사이드가 심각한 사회문제다. 올해 들어 여성 살해 사건만 이미 16건 이상 발생했다. 그중 상당수가 전 남자친구, 남편, 연인에 의해 벌어졌다. 약 6주 전에도 이틀 간격으로 여대생 2명이 잇따라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해 큰 파장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