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년 전 변이 시작"…제주 사람 '해녀 유전자' 알고보니

[곽재식의 세포에서 우주까지] 제주 해녀 유전자와 정부의 힘

제주도 해안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는 해녀 모습. 제주 해녀들은 저체온증과 고혈압 위험을 줄이는 특별한 유전적 변이를 갖고 있다는 연구 보고서가 최근 발표됐다. [연합뉴스]

제주도 해안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는 해녀 모습. 제주 해녀들은 저체온증과 고혈압 위험을 줄이는 특별한 유전적 변이를 갖고 있다는 연구 보고서가 최근 발표됐다. [연합뉴스]

‘폭싹 속았수다’가 한창 화제이던 이달 초, 미국 유타대의 유전학자인 멀리사 일라르도 박사와 그 동료들이 발표한 논문 소식이 국내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유전자 분석을 해 봤더니 제주도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독특한 유전자들이 나타났고 그런 유전자들이 해녀로 일하기에 유리한 특성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혈압을 낮추는 유전자와 추위를 더 잘 버티는 유전자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유전자들은 잠수 중에 혈압이 높아지는 현상을 방어하는 데, 그리고 추운 바다에서 오래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소식을 듣고 신기했던 것은 미국 유타의 연구자가 한국의 해녀 유전자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유타라면 바다는커녕 서부 영화에 나오는 황야가 드넓게 펼쳐진 아메리카의 내륙이다. 발표된 논문을 직접 찾아 살펴 보니 어느 정도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논문의 공동 저자 중에 서울대 의류학과의 이주영 교수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주영 교수는 일전에도 차가운 바다에서 작업하는 해녀의 의복을 연구했던 적이 있는 학자다. 아마 그런 경력 속에서 쌓인 해녀 문화에 대한 지식이 미국 유전학자와의 공동 연구로 이어져 추위를 견디는 해녀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탄생한 듯 싶다.

육지 지배 시작된 1200년 전부터 변화
학자들은 제주인들에게 나타난 혈압을 낮추는 유전자를 잘 활용하면 고혈압이나 뇌졸중 같은 혈압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중이다. 언뜻 생각하면 의류학과의 연구자가 고혈압 치료 연구와 무슨 상관일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 과학 연구는 흔히 이런 식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는 사례가 많다. 과목과 학과를 나누어야 하는 입시라는 테두리 속에서만 생각하면 문과와 이과 사이에 큰 벽이 있고 전공별로 사람이 나뉜다는 식으로 세상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첨단 기술 시대에 실제 현장 일에 뛰어들어 보면 어느 분야든 융합이 아닌 곳이 없다.

내가 두 번째로 해녀 유전자 연구에서 신기하게 여겼던 대목은 이러한 제주 사람들의 유전자 변화가 대략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 쯤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천몇백 년 전 쯤이라는 이런 묘한 숫자가 왜 나타났을까? 제주도라는 자연 환경에 어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면 제주도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의 유전자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기술의 발전으로 급격히 사람들의 삶이 바뀌기 시작한 근현대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천몇백 년 전이라는 시점은 애매해 보였다. 왜 하필 그때부터 제주도 사람들이 해녀에 적합한 체질로 바뀔 수 밖에 없었을까? 혹시 그 즈음 바다 속에서 살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수퍼 히어로가 문득 우주에서 제주도로 떨어져서 제주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나누어 주기라도 했을까?

더 이상 명확히 밝혀진 사실은 없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상상과 짐작일 뿐이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대략 다음과 같은 사연을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다.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펴낸 기록화첩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 실린 그림 ‘병담범주(屛潭泛舟)’속의 잠녀(해녀). [중앙포토]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펴낸 기록화첩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 실린 그림 ‘병담범주(屛潭泛舟)’속의 잠녀(해녀). [중앙포토]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조선의 정치계에서 활약한 인물 중에 김춘택이라는 양반이 있다. 그는 숙종 임금 시기 악명 높은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둘러싼 정치 다툼의 한 가운데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그런 만큼 결국 말년에는 그 다툼의 후과로 제주도에 귀양살이를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제주에서 해녀라는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래서 김춘택은 일종의 인터뷰를 글로 남기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도 남아 있는 ‘잠녀설(潛女說)’이라는 글이다.

‘잠녀설’에 따르면 당시 제주 해녀들은 너무나 힘들게 일을 했다고 한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위험하고 괴로운 일을 하냐고 김춘택이 물어 보자,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의 제주 해녀는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해녀는 자신의 첫 번째 어려움이 “전복을 따는 문제”라고 했다. 당시 조선 정부에서는 제주 사람들에게 제주에서 나는 특산물인 전복 등의 해산물을 갖다 바치라고 하면서 사람마다 각기 수량을 정해 주었다. 이것이 역사에서 말하는 공납제도인데, 위에서 전복 수량을 정할 때는 해녀들의 사정을 봐 가면서 그 숫자를 정할 리가 없다. 대신 높은 사람들의 적당한 생각과 필요에 따라 숫자를 정하기 마련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거두어 들인 공납 물품을 흔히 조정의 관리들과 실력자들이 각각 중간 단계에서 일정 정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곤 했다. 그렇다 보니 무리한 양의 전복을 바치라는 명령이 내려올 때가 많았다. 해녀 입장에서는 그 숫자를 채우지 않으면 국법을 어긴 죄로 굉장히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라도 전복 수를 채워야 했다. 그래서 해녀는 힘들게 일할 수 밖에 없었다. 제주도에 질 좋은 전복이 있다는 장점이 정부의 눈에 뜨이니까 도리어 제주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원수 같은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이어서 제주 해녀는 김춘택에게 자신의 두번째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 어려움이란 “전복을 사는 문제”였다. 그 말을 듣고 김춘택은 의아해 한다. 당신이 전복을 따는 해녀인데, 왜 당신이 전복을 사야 한다는 것인가? 그러자 해녀가 답하는 내용이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 자신이 전복을 딸 수 없게 되거나 전복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정부에서 한번 정해 놓은 법은 사정을 봐 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일이 생기면 전복을 다른 곳에서 사 와서라도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른 뭐라도 바다에서 따 와야 한다. 그래서 전복이 있든 없든 죽기 살기로 해녀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잠녀설’의 말미에 김춘택은 그 해녀를 두고 “참으로 불쌍히 여길만하다(誠可憫)”라고 썼는데, 평생 서울의 궁중에서 장희빈이니 숙종이니를 두고 다투던 김춘택이 제주도에서 진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접한 뒤에 “도대체 내가 정치를 왜 한 것인가”라는 깊은 생각에 빠진 것 같다는 느낌도 주는 글이었다.

가혹한 정부 정책이 진화 이끈 역설?
나는 제주도가 한반도의 중앙 정부와 본격적인 관계를 맺은 시점이 언제 쯤이었나 돌아보았다. 『고려사』에 따르면 제주도, 옛 이름으로 탐라는 삼국 시대 후반부터 한반도의 정부와 활발히 교류하고 복속하기 시작했고 고려 초기인 938년에는 고려 정부에서 제주도를 다스리는 사람에게 ‘성주(星主)’라는 독특한 작위를 내려 주며 신하로 삼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 사이인 지금으로부터 약 1000여 년 전 쯤이 한반도 정부가 본격적으로 제주를 다스리기 시작한 시점일 것이다. 그저 공교로운 우연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시기는 앞서 연구에서 제주 사람들의 유전자가 바뀌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했던 시점과 멀지 않다.

그래서 나는 제주 사람들의 유전자가 바뀌는 진화를 일으킨 압력이 어쩌면 가혹한 정부의 정책이었을 수도 있다고 상상해 본다. 제주 사람들이 탐라국을 이루고 살 때에도 나름대로의 갈등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는 적어도 제주에서 나는 특산물을 멀리 갖다 바치는 일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잠녀설’에 나타난 것과 같은 지독한 정부 정책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해녀 일을 잘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살아 남지 못할 정도로 제주 사람들은 시달리게 된다. 다시 말해 해녀 일에 유리한 유전자를 조금이라도 더 가진 사람들만이 살아 남아 대를 이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천 년의 세월이 지나서 우리가 보는 결과가 나타난 것 아닐까?

정확한 과학적인 결론은 더 많은 연구와 조사가 있어야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전에라도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짚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조선 시대의 양반들이 그렇게나 인의(仁義), 그러니까 어질고 정의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생 부르짖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막상 정부를 운영하면서 조금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이렇게까지나 잔혹하게 백성들을 괴롭히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자기 시각이 아니라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더 깊이 생각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며 경계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해녀의 유전자가 우리에게 들려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곽재식 작가·숭실사이버대 교수. 공상과학(SF) 소설가이자 과학자. 과학과 사회·역사·문화를 연결짓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괴물 백과』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등을 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화학을 전공, 연세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