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3차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경찰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군(軍)사령관들의 보안 휴대전화(비화폰) 정보를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는 정황을 포착해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대통령 경호처로부터 비화폰 서버 및 계엄 회의장 폐쇄회로(CC)TV 화면 등을 확보한 만큼 오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 이후 윤 전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겠단 계획이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지난달 30일 김성훈 경호처 차장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하는 등 경호처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김 차장과 이광우 전 경호본부장 등 경호처 관계자들이 지난 1월 3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1차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방해했단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김 차장은 사의를 표명한 뒤 대기발령 상태다.
경찰은 김 차장 등을 상대로 지난해 12월 7일 윤 전 대통령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등 군사령관의 비화폰 정보를 삭제할 것을 지시했단 정황에 대해 조사했다. 비상계엄 선포 나흘 만인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차장에게 두 차례 연락했는데, “수사받는 사람들의 비화폰에 대해서 조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에 김 차장이 담당 실무자에게 보안 조치를 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경찰을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해당 보안 조치가 ‘원격 로그아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비화폰은 통화 내용을 암호화해 도·감청 및 녹음을 방지하는 기능을 갖고 있고, 원격으로 로그아웃하면 비화폰 내 정보 등이 지워진다고 한다.

지난 3월 8일 법원의 구속취소 청구 인용으로 석방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밀착경호하는 김성훈 대통령 경호차장(오른쪽). 뉴스1
경호처 실무진, 삭제 지시 따르지 않아
그러나 경찰은 이런 정황이 증거인멸 혐의와 연관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6일 윤 전 대통령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비화폰 정보가 원격으로 삭제된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 윤 전 대통령이 관련됐는지 의심하고 있다. 김 차장 측은 “12월 6일 비화폰 정보 삭제는 김 차장과 전혀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왼쪽부터 순서대로). 연합뉴스
경찰은 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에 대한 수사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지난달 26일엔 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한꺼번에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세 사람 모두 출국금지 상태다.
경찰은 최근 경호처로부터 확보한 용산 대통령실 5층 대접견실과 대통령 집무실 복도 CCTV 영상 등을 분석해 “계엄 선포를 만류했다”는 이들의 기존 진술과 다른 정황을 파악했다. 경찰은 대선 이후 이들 포함 당시 국무위원들을 추가 조사해 계엄 선포 전후 상황을 재구성하겠단 방침이다. 조사 내용에 따라 한 전 총리 등에 대한 경찰의 신병 확보 시도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경찰은 확보한 비화폰 서버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내란 혐의 관련 비화폰 서버 기록을 경호처로부터 확보했지만, 보안 등의 이유로 실질적인 분석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비화폰 통화 내역 및 CCTV, 진술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