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도울 기금 조성"…의료사고 분쟁 머리 맞댄 의사·환자들

강희경 서울의대 소아과학교실 교수(가운데)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11일 서울 명동 YWCA에서 열린 ‘의료소비자-공급자 공동행동' 기자간담회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스1

강희경 서울의대 소아과학교실 교수(가운데)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11일 서울 명동 YWCA에서 열린 ‘의료소비자-공급자 공동행동' 기자간담회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스1

"의료사고를 민·형사 문제로만 접근하지 말고, 환자 안전 강화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의대 교수와 환자들이 그간 맞서온 의료사고 대응을 놓고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냈다. 철저한 사고 조사를 바탕으로 의사는 형사처벌보다 면허 관리, 환자는 피해 보상을 위한 기금 조성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은 의료시스템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의료소비자-공급자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11일 간담회를 열고 이러한 의료혁신안을 내놨다. 공동행동은 지난해 의정갈등을 계기로 의대 교수들과 환자·시민단체가 함께 꾸린 모임이다. 이날 간담회엔 강희경 서울대 의대 교수와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 유미화 GCN녹색소비자연대 상임대표 등이 참석했다.

의사·환자 간에는 의료사고를 둘러싼 불신과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장기간 이어지는 소송(민사 1심 평균 26개월)에 필수과목 의사, 환자 가족 모두 어려움을 겪곤 한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3월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으로 의료기관 배상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의료사고심의위 구성 등의 의료사고 안전망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의사·환자 단체의 반발 등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한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한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공동행동은 "의료사고 우려로 의료진이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의료사고로 환자·가족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 해결할 과제"라면서 "지금보다 더 안전한, 환자 안전이 강화된 의료시스템을 요구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단체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밝히는 독립적인 공적 조사 기구(가칭 '환자 안전 조사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독립적·객관적 조사가 가능한 의료 전문가가 포함된 상설 기구를 꾸리는 식이다. 뉴질랜드 '건강 장애 위원회', 덴마크 '환자 안전청' 등 비슷한 해외 사례도 들었다.


해당 기구의 조사 결과 고의·범죄가 아닌 의사 과실로 확인되면 형사처벌 대신 면허 관리를 하는 쪽으로 가자는 제안도 내놨다. 한국에선 의료 과실이 의사 면허 정지·취소 사유가 아니다. 하지만 영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에선 의료행위 제한이나 면허 정지·취소로 재발을 방지하는 만큼 이를 참조하자는 것이다. 또한 법조계엔 의료사고 재판에 적용되는 판결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고 밝혔다.

의료사고로 피해를 본 환자와 가족을 빠르게 돕기 위한 '의료사고 안전망 기금' 조성도 촉구했다.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와 무관하게 일단 기금으로 보상하자는 취지다. 건강보험 재정을 활용하는 대신, 의료기관 귀책사유가 확인되면 해당 기관에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고 봤다.

오주환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정부 안은 의료기관이 (배상책임)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했지만, 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필수과 의사들에 돈까지 더 내라는 얘기라 거부감이 크다"면서 "건보에서 이미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위험 관련 수가 연 3000억원 정도를 (기금) 자금으로 하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주 대표는 "몇 달 동안 난상토론 하듯 꾸준한 논의를 거쳐 의사·환자가 합의한 내용이란 의미가 크다. 이런 논의가 사회적 공론 과정에서 활발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