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명씨가 울산에서 200번째 헌혈을 하는 모습. 사진 허명씨
"매혈(賣血)하던 사람이 피를 너무 많이 뽑아서 죽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죠. 여건이 된다면 사람 목숨을 구하는 게 올바른 인생이다 싶었습니다."
헌혈 개념이 흐릿하던 1976년, 그렇게 '내 피'를 처음 남에게 나눴다. 공식 기록인 헌혈증을 받은 건 1982년부터. 헌혈은 한 달에 한두 번씩 이어지는 제일 중요한 일정이 됐다. 그 일상이 수십년간 쌓여 707회(12일 기준)가 됐다. "초반에 헌혈증 못 받은 것까지 따지면 실제 800번 훨씬 넘게 헌혈했죠."
'헌혈자의 날'(14일)을 맞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는 70세 허명씨 이야기다. 울산에 사는 허씨의 삶은 헌혈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몸에 해로운 술·담배는 아예 하지 않고, 육류나 커피·콜라도 멀리한다. 매일 2시간 가까이 산행하면서 체력을 관리하고, 아파트 6층에 있는 집도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헌혈을 위한 몸 관리에 철저한 동시에, 건강과 의지가 받쳐주니 지금껏 헌혈할 수 있는 것이다.

꾸준히 헌혈에 참여한 점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는 허명씨. 사진 허명씨
실제로 헌혈할 시기가 되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했다. 다른 약속을 제쳐두고 최우선으로 피를 나누러 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의무 아닌 의무 같은 생활을 해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죽하면 표창을 받는 13일, 헌혈자의 날 기념식 참석 때문에 예정된 헌혈을 미루는 게 못내 아쉬울 정도다. 내 집처럼 드나든 울산 지역 헌혈의집 직원들과도 가족 같이 친하다고 한다. 그는 "헌혈도 일종의 중독 같다"면서 "피 검사도 공짜로 해주니 얼마나 좋냐"고 했다.
은퇴 전까지 허씨는 32년여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직 직원으로 일했다. 주·야간 교대 근무에 지친 몸이라도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헌혈만큼은 빼먹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 동료에게도 헌혈 참여를 독려했다.

70세 허명씨가 1980~90년대 헌혈하고 받은 헌혈증들. 사진 허명씨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헌혈 건수는 285만6000건이다. 총인구 대비 헌혈률은 5.6%다. 직전 해보다 높아졌다지만, 6%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속에 헌혈 주력인 10·20대가 줄어드는 반면, 고령화로 노년층 혈액 수요가 증가할 전망이라 '경고등'이 켜졌다.
허씨는 한국 사회에 헌혈에 대한 오해가 여전하다고 아쉬워했다. 혹여 무언가에 감염되거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최첨단이라는 현대 의학도 인공혈액은 아직 못 만듭니다. 혈액은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죠. 나 자신도 언제 수혈이 필요할지 모르는 만큼, 건강한 사람이라면 편견보다 의지를 갖고 헌혈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