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의 CBDC 프로젝트 ‘한강’
29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 26일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CBDC) 실거래 1차 테스트(한강 프로젝트) 참여 은행들과의 비대면 회의에서 2차 테스트 관련 논의를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한은 관계자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허용될 경우 두 사업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관련 논의를 지켜본 후 2차 테스트 추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도 앞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 관련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상황인데, 시중은행 입장에선 (디지털 화폐 실거래 테스트에) 인적ㆍ물적 투자를 적잖게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며 “2차 테스트의 시기와 내용 등은 은행과 협의해 시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은은 올해 4월부터 일반 국민 약 8만 명을 대상으로 CBDC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해왔다. 한은이 기관용 CBDC를 발행하면 KB국민ㆍ신한 등 7개 은행이 이와 연계된 지급 수단인 예금 토큰을 다시 발행하고, 금융 소비자가 이를 결제에 활용하는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했다. 이달 말 1차 테스트를 마무리하고 2차 테스트에선 개인 간 송금, 결제 가맹처 확대, 인증 방식 간편화 등을 선보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원화 스테이블 코인 논의가 진행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스테이블 코인은 ‘1코인=1000원’처럼 법정화폐나 국채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디지털 화폐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스테이블 코인 관련 업체 대표로 재직했던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임명하면서 법제화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비은행에도 허용할지, 자기자본을 어느 정도로 규제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한은은 우선 은행부터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도록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이 경우 결제 절차를 간편화해서 수수료를 낮추고, 돈을 프로그래밍화해서 영세 사업장에서만 사용하도록 제한할 수 있다. 대신 이런 기능은 CBDC와 겹칠 가능성이 크다. 스테이블 코인 논의에 탄력이 붙을수록 CBDC는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은행연합회는 최근 은행들의 의견을 수렴해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후속 테스트를 진행하려면 상용화 계획까지 포함한 장기 로드맵부터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 일정을 현실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한은에 요청했다. 구체적인 상용화 계획이 없고, 비즈니스 모델이 불분명하다 보니 내부적으로 관련 예산을 마련하고 유관부서를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은행들의 보수적인 경영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1차 테스트에 필요한 전산 시스템 구축, 마케팅 비용 등으로 각 은행이 30억~60억원씩 비용을 부담했다고 하는데, 중장기적으론 디지털 화폐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선 결코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당장 결실을 보긴 어렵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건지, 인프라부터 깐 다음 수익 모델을 구체화해 나갈지는 개별 은행 경영진이 전략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